"'상담하러 오세요'라면 누가 오겠나"

2014-05-15 14:42:16 게재

정혜신 박사, 세월호 트라우마 치료 문제점 지적 "상처받은자끼리 서로 돕도록 설계하는 게 핵심"

"팽목항에 상담부스가 있는데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 상담하러 오세요하면 상담이 되겠느냐. 상담하러 오라하면 때려 죽이고 싶지 않겠느냐. 내자식이 바다에 갇혀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상담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혜신 박사가 지난 13일 '세월호와 지역공동체'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정석용 기자>

지난 13일 안산시 농협시지부 강당에서 열린 '세월호와 지역공동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신경정신과 정혜신 박사는 "현재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치료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지금은 상담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 더 이상 일상이 깨지지 않게 받쳐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가 오면 누가 밥이라도 해주고 준비물을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청이나 구에서 생수, 햇반, 쵸코파이 한박스씩 놓고 가는데 유가족들은 '우리가 거지냐'며 분노한다"며 "물품을 그렇게 놓고 가지 말고 풀어서 냉장고에 넣어 주거나 정리라도 해주는 것이 심리치료의 터치"라고 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집으로 와서 청소하고 정리도 해주지만 구경만 할 수 없는게 피해자들의 입장"이라며 "친인척이나 가까운 이웃이 와서 돌봐주고 여기에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존자 부모에 대해서도 정 박사는 "현재는 잘 안보이고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천형을 짊어지고 살게된다"며 "장기적으로 치유를 받지 않으면 희노애락이 없어지고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중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슬퍼하고 고통과 분노를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라며 "감정을 못느끼는 사람은 굉장히 병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나 이웃들이 피해자들을 만날 때 대하는 태도에 대해 "동네에서 피해자를 만날때 크게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며 "오히려 '그립죠 미치도록 보고싶죠'라고 이야기 하며 함께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격려하고 따뜻한 밥 한그릇 사주는 것이 위로와 공감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상처가 될까봐 본질을 외면하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얼마나 보고싶은지 그리운지를 이야기하고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물리적으로 사망이지만 심리적으로 죽음이 아니다"며 "동네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내 자식과 나눴던 말, 경험이나 추억을 편지로 남겨준다면 내 아이가 친구의 기억속에 남아 있고 살아있다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최고의 치유자"라며 "피해자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 돕는 심리적인 설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의 상호치유가 치유의 핵심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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