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Talk

주부가 우울할 때

2014-10-10 15:35:02 게재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면 유독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하지요. 가을이 부르는 우울증에는 남자들도 취약해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부들은 어떨까요? 30대부터 50대까지 6명의 주부 독자들을 만나 언제 우울하고 어떻게 해소하는지 들어 보았습니다. 리포터가 함께 고개 끄덕이고 무릎을 치며 들은 주부들의 이야기, 독자들과 함께 나눠봅니다.
 

질환을 앓으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실감할 때
운정 최형경(38) 주부

얼마 전 명절 지나고 방광염이 생겼어요. 의사들은 너무 쉽게 그 나이쯤 되면 여자들은 자궁도 약해지고 몸도 안 좋아진다고, 당연히 아플 나이가 됐다는 듯이 말해요. 당황스러웠죠.
어릴 때는 차가운 걸 좋아해서 얼음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엔 잇몸이 밀리고 시려서 못 먹어요. 나는 왠지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노화를 질환으로 느끼는 거예요.
검버섯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만 생기는 거라고 나한테는 아주 먼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에 나타나고. 피부도 살이 찌다가 쳐지기 시작해서 수영복도 못 입고. 옛날부터 관리를 할 걸 후회도 막연히 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못할 것 같아요. 영원할 것처럼 몸을 쓰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지고 이게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을 때 우울하죠.
아이들 어릴 때는 직장에 다니느라 학교 끝나고 학원을 보냈어요. 가끔 아이들이 그때 안 좋았다는 말을 하거든요. 내가 뭐 하려고 이렇게 애들을 고생시켰을까, 일확천금을 얻은 것도 아닌데 그런 게 후회되죠.

친구 만나 수다로 풀어
내 몸이 예전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 밤샘을 해도 쌩쌩했는데 이제는 체력이 달린다는 것. 자꾸 먹는 약은 늘어가고 몸에 좋은 음식 찾고. 그게 자기만족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나랑 같은 또래인데 너무 날씬하고 관리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진짜 우울해요. 그럴 땐 나랑 비슷한 사람 만나서 입으로 풀어요. 신나게 먹고 또 찌고. (웃음) 그걸 반복하는 거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렇구나. 그래도 괜찮아 서로 위안하고.
요즘은 아이들이랑 같이 저녁시간에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간을 더 늘려가려고 해요.


내 일과 꿈 찾을 수 없어 막막할 때
봉일천 오주리(38) 주부

결혼 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지쳐갈 무렵 남편을 만났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결혼해서 못하게 되니 일이 하고 싶고 그리워지는 거예요.
2011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를 통해서 여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제 성격이 수동적인 편이거든요. 흘러가는 대로 20대를 살았고 한 남자를 만나 당연한 듯 결혼하고 아이를 낳긴 했는데 돌아보니 내 중심이 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외할머니도 여자로 아이를 낳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외롭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어쩌면 그게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생이 되게 짧다는 걸 그때 30대 중반쯤에 느꼈어요.

스타 팬카페 활동으로 공감할 수 있는 친구 찾아
이제 나도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마음은 답답한데 그때는 아이들이 4살, 1살이라 어리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뭔가 시작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 같기도 했어요. 엄마고 주부니까요.
그러던 참에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어요.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삼동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죠. 삼동이를 연기한 김수현이라는 배우의 옛날 사진과 영상을 보고 싶어 팬카페에 가입했어요. 그 안에서 공감해주는 또 다른 사회를 만났죠. 그때는 아이들도 어리니까 남편도 저도 서로에게 기대라고 버팀목이 되어 줄 여력이 없었어요.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나마 만나면서 조금씩 답답한 마음이 나아졌어요.
3년이 지난 지금도 고민은 여전해요. 그래도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 조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10월부터는 홈패션을 배울 거고 아침에 운동도 시작했어요. 팬카페에서 디자인을 해주는 게 소문이 나서 다른 스타 팬카페에서도 간간이 디자인 의뢰가 들어와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가족들한테도 다 맞추지 않고 제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해요.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 볼 때
운정 이지현(40) 주부

출산하고 나면 살이 많이 찌잖아요. 저도 잘 안 빠지더라고요. 신혼 때처럼 처녀 때처럼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가 없고 몸이 틀어져서 잘 안 맞을 때. 예쁜 옷 입고 싶은데 못 입고 입어도 핏이 안 나올 때 아주 우울해요.
옛날 사진을 보고 거울을 봤을 때 너무 늙은 것 같아 슬퍼져요. 이러다가 애만 키우고 곧 죽을 일밖에 안 남았겠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좀 그래요.
첫째 때는 잘 몰랐어요. 밖에 나가면 이모라고 하고 그때만 해도 나이가 들어가는 걸 잘 몰랐으니까. 둘째를 낳고 나서 사람이 늙더라고요.
올해 딱 마흔인데 슬프게 느껴져요. 내 마음은 아직도 젊고 똑같은 것 같은데 내가 20대 때 아줌마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인 거예요.

일생 마지막 다이어트로 활력 찾고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떤 날은 화도 나고 즐겁고 기쁜 날도 있죠. 육아 때문에 힘든 건 없어요. 그냥 제 모습 때문에 속상해요.
기분 전환은 아주 사소한 것이 해줘요.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면 잠깐 기분이 없어져요.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이게 뭔가 싶고.
피부샵에서 시술도 받았는데 별 효과는 없었어요. 살을 빼는 게 방법이라 생각해 인생에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했어요. 헬스에 가서 운동하고 저녁밥은 굶는 거예요. 처음 2, 3일은 힘들었죠. 딱 한 달만 집중해서 빼보려고요. 맘 같아선 10kg 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할 것 같아 5kg만 빼려고 해요. 지금 목표는 오직 다이어트 생각뿐이에요.

분명 웃었는데 사진 속에서는 인상 쓰고 있을 때
덕이동 이정민(40) 주부

나이 들면서 사진을 찍기가 싫었어요. 뱃살에 힘을 줘도 숨을 안 쉬어도 똑같은 거예요. 사진을 찍으면 내가 늙었는지 아닌지 티가 나요. 피부 탄력이 떨어져서 나는 웃고 있지만 사진 속의 사람은 화가 나고 울상이에요.
얼마 전 놀이공원에 갔는데 사진을 안 찍으려고 하니까 남편이 어디를 가리고 싶냐 몸이냐 얼굴이냐 물어요. 둘 다 가리고 싶다고 했죠.
백화점에 가서 예쁜 옷을 입어도 거울 속에는 왠 뚱뚱한 아줌마가 옷이 터질 듯 인상 딱 쓰고 서있는 모습을 볼 때.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라 잘 몰랐는데 나 우울증 이었나 봐요. 불쑥불쑥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는 것도 우울증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왕이면 밝고 예쁘게 늙어가자
젊을 때 하루 3시간씩 자고 밤새는 일도 많았어요. 하도 바쁘게 살아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어요. 이제는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모든 걸 돌아보게 돼요.
이제는 나이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나이 들까 고민해요. 기왕이면 심술 가득한 사람보다 밝고 예쁘게 늙어가자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차피 나한테 생긴 주름을 가지고 예쁘게 웃을 수 있을까 연구하게 돼요. 그래서 사진 찍을 일 생길 땐 속으로 생각하죠. 입 꼬리는 예쁘게 올린다. 눈은 반달모양으로 웃는다 하면서요. 나이 들수록 깊고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없나 자꾸 고민하는 거죠.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교하 윤옥(55) 주부

40대 초반에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한동안 신앙을 갖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 일 이후로 저도 나이가 있다 보니 굉장히 침체되고 우울했어요.
파주로 이사하고 한동안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우울하기도 했어요. 제가 환경에 약한 부분이 있어서요. 그렇게 두 번 힘든 일이 있었는데 화초를 키우면서 극복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화초를 보면 새록새록 자라 있어서 생명력이 느껴졌어요. 단순한 화초 키우기 작업에 집중했더니 남향 베란다가 꽉 차기 시작했죠.
장마철이면 화초 상태가 안 좋아져요. 아파트 화단 앞에 내놓았더니 자연의 바람과 햇볕으로 인해 너무 잘 자라요.

화초 키워 나누며 생기 되찾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공부하면서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지식을 쌓았어요. 내 손에만 오면 잘 자라는 게 기뻤죠. 알로에를 키우다가 새끼를 치면 조그만 화분에 넣어서 심었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많아졌어요. 어떻게 할까 갖다 버릴까 고민하다 나눔장터에 갖고 나가 저렴하게 팔았어요.
나는 쑥스러운데 사람들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예쁘게 화분을 꾸미고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게 좋다는 나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좋아요. 지금은 즐기게 됐어요.
지금 대학원 석사 과정 공부 중에 있어서 바쁘거든요. 얼마 전 나눔장터가 있다고 해서 빠지려다가 나갔더니 아침부터 사람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자기들이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해요.
노후에는 이런 직종하고 연결해서 일 할 생각도 하고 있어요. 원예 치료도 좋다고 해서요.


직장에서 고생하는 아이 모습 볼 때
주엽동 차정숙(56) 주부

딸이 28살인데 얼마 전 직장에 들어갔어요. 아이가 혼자다 보니 다 컸는데도 아직은 속상한 일들이 생기네요. 힘들게 일하고 며칠 만에 집에 들어와 잠도 못 자고 혼자서 교회에 나가는 뒷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안 좋았어요. 저는 저 나름대로 아이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는데 아이는 힘든 일을 혼자 속으로 삭이면서 또 밖으로 나간다고 하니까. 엄마인 저는 소외된 것 같기도 하고 웃기는 얘기지만 어쩐지 자식한테 반발심 같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아이가 일 욕심도 많은데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시작한 건 아닌가 싶고.
최근에는 친구들하고 자녀들 데리고 만나는 모임이 있었는데 제 자신에 대해 화가 나 있으니까 집에 와서 괜히 화풀이 하고요.

드라이브로 훌쩍 여행 떠나며 털어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어떻게 해주지 못하고 부모 입장에서 더 많은 것을 도와주고 싶은데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 여건에서 안 될 때 마음이 아파요.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지쳐 있는데 말은 못하고 그걸 보며 속상한 마음이 우울증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많이 털어버리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제 나이 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남편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힘들 때면 저는 차를 몰고 한 바퀴 돌아요. 어떤 날은 새벽에 나가 을왕리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든지 마음을 털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친구들하고 차 안에 앉아서 쌓였던 것 주고받으면서 내 삶에 막힌 것을 풀기도 해요. 낙서 비슷하게 글을 쓰기도 하고 술 한 잔 마실 때도 있어요. 안 그러면 속병이 나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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