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들, 모뉴엘 탓 실적 치명타

2014-11-04 12:51:47 게재

신용대출 잔액 71.8%가 국책은행 몫

홍기택 산업은행장 "수익 맞추기 쉽지 않아"

수출입은행, 100% 신용대출로 손해 클 듯

엑스트라까지 동원해 은행 실사단을 속이는 등 기막힌 사기극을 벌인 모뉴엘 탓에 국책은행들의 실적도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자율협약에 따른 대손충당금 부담에 이어 모뉴엘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지난해 1조4000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13년만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시련을 맞게 된 셈이다.

수출입은행은 모뉴엘 건으로 어느 은행보다도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담보 없이 100% 신용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9월말 기준 모뉴엘에 대한 은행권 여신은 총 6768억원이다. 이 가운데 무역보험공사나 신용보증기금 등의 담보가 설정된 여신은 3860억원이다. 나머지 신용으로 빌려준 2908억원은 규모는 약간 줄어들 수 있을지 몰라도 꼼짝없이 은행권이 안아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이중 대부분이 국책은행들의 손실로 귀결되리라는 점이다. 신용대출액 2908억원 중 71.8%(2087억원)가 국책은행들이 대출해준 돈이다.

특히 신용대출 잔액 1위(1135억원)인 수출입은행은 100% 신용으로 대출해줘 하소연할 곳도 없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은 1135억원 중 300여억원은 대출, 나머지 800여억원은 수출채권을 매입해준 돈이라며 순수 대출은 300여억원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세청 조사 결과 모뉴엘이 허위수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난 마당이어서 수출채권 매입자금을 내줘야 할 수입자들이 과연 이 돈을 갚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은 "아직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또 모뉴엘을 강소기업을 지칭하는 히든챔피언으로 지칭해 금리우대 및 비금융서비스를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기도 하다.

총여신 1253억원 중 신용대출이 499억원인 산업은행도 갑갑한 처지다. 산업은행이 손실을 본 다른 여신과 비교하면 액수가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동부제철의 자율협약으로 대손충당금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기 때문이다. 산업은행도 올해 사정이 만만치 않다고 보고 있다.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수익 전망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 "올해도 수익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모뉴엘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기업은행은 그나마 담보 비중이 높아 어느 정도 안도의 숨을 쉰 케이스다. 기업은행의 모뉴엘 여신액은 1508억원으로 가장 많지만 신용대출만 따지면 453억원으로 산업은행의 신용대출액(499억원)보다 적다. 기업은행은 3분기 실적에 모뉴엘 관련 충당금을 422억원 쌓아 거의 100% 손실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의 3분기 이익은 2338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0% 줄어들었다.

국책은행은 아니지만 은행권 대출 3256억원을 보증해줬던 무역보험공사도 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은행권과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였던 무보는 무역보험기금으로 은행권 여신에 대한 보증을 이행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수출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울며 겨자먹기식 이행이다.

국책은행과 공기업이 모뉴엘에 대거 물리면서 관련 제도에 대한 점검도 이뤄질 전망이다. 신용대출 비중이 높은 정책자금은 사기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는데다 국가재정에도 곧바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한편, 모뉴엘에 물린 시중은행들은 3분기에 충당금을 쌓으며 손실에 반영했다. 국책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중 모뉴엘에 가장 많은 여신(1098억원)을 준 외환은행은 240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이는 모뉴엘에 신용대출한 액수를 100% 반영한 금액이다. 이 탓에 3분기 이익은 전 분기보다 무려 47.2%나 줄어든 1320억 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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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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