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IMF세대의 진보성과 촛불세대의 보수화

2015-01-05 00:00:01 게재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이번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2030세대는 결코 한 묶음이 아니었다. 이념성향으로만 보아도 젊을수록 진보적이고 나이 들수록 보수적인 기존의 패턴이 사라졌다. 20대 후반이 30대보다 보수적이었고, 30대 후반은 20대보다 진보적일 뿐 아니라, 전 연령대를 통 털어 진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다. 2002년 대선의 각종 선거자료에서 나타났던 연령 효과의 패턴과 다르기 때문이다.

세대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딜타이(Wilhelm Dilthey)가 정의하였듯이 '세대'란 '청년기에 어떤 큰 사건을 만나 그 사건의 강력한 영향으로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니게 되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청년기에 IMF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와 그 이전 세대, 이명박정부를 맞이하게 된 세대와 그 전후 세대가 다를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유권자들을 구분한 결과, 적어도 젊은층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적 경험을 한 연령집단이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IMF세대'는 명칭에서는 우울함이 묻어나지만 오히려 역동적 변화를 경험한 세대다. 이번 조사에서 IMF세대는 20대 전반을 제외하고 가장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보성은 정치권과 진보진영이 생각하는 '진보'와는 많이 달랐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가장 강도 높게 찬성하였지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에도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찬성의 이유를 보면, 집단적이거나 국가적인 이유보다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 권리에 대한 고려가 더 많이 나타났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묻는 이번 조사의 다른 질문에서도 확인되었지만, IMF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매우 강하다. 이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변화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실력을 쌓은 것을 특히 중요시한다. 소위 '정글자본주의'를 체화하면서 '스펙쌓기'에 골몰하게 된 것도 이 세대다.

IMF세대에 비해 '촛불세대'라고 명명된 20대 후반세대는 또 달랐다. 이들은 세계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저성장과 양극화의 구조화를 겪고 있는 세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대통령선거에서는 '진보→보수'로의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일자리 부족으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을 겪으며 사회에 내몰리고 있는 세대다.

인터넷 보급과 컴퓨터 성능 향상에 힘입어 어릴 때부터 정보화 혜택을 누렸던 세대로, 검색을 통해 아는 것은 많지만 정신은 성숙하지 않았다고 하여 '초딩'이라 불렸다. 성장기를 주로 컴퓨터 게임에 묻혀 산 세대로 상사와 부하, 명령과 복종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촛불세대는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 동안 각종 선거자료에서 20대가 30대보다 더 보수적으로 나타났던 배경에는 20대 후반인 촛불세대의 보수화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촛불세대의 보수화를 이끄는 집단이 남성이라는 점이다. 20대 후반의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진보적인데 반해, 이 세대의 남성은 40대 전반만큼 보수적이었다. 내일신문이 실시한 지난 지방선거 패널조사자료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눈에 띠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을 겪으면서 사회에 내몰리고 있는 이들 세대에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경제적 압박을 더 받기 때문에 성장과 안정을 더 선호할지 모른다.

또 다른 설명은 이 세대의 남성들이 게임에 빠져 사는 유년기를 보냈는데 반해 여성들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친구들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사회화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세대의 여성들이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시위'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정치정향도 더 진보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남성의 군입대로부터 오는 여성과의 경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세대에서만 유독이 남자가 보수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이명박정부 이래 병영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제 젊은 유권자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언제까지나 '민주당 계열'의 정당을 지켜주는 철벽 지지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기만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대통령선거와 최근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났다. 내일신문의 이번 조사를 통해 이런 변화의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젊은 유권자가 다양해졌다. 정당들은 분절화된 세대집단의 특성을 고려해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지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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