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이슬람 불사조

칼리프 제국의 부활을 꿈꾸나?

2015-02-27 11:02:48 게재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 노만수·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1만3000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은 24일 국회에서 지난달 터키에서 사라진 김모(18) 군이 시리아에 있는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날 검은 복면을 한 IS 대원이 태권도 태극1장 품새를 재연하는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미 한국인 대원이 IS에 합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단기간에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른 동시에 세계를 위협하는 준 국가형태의 IS는 과연 어떤 조직인가! 테러리즘 연구자인 저자는 IS가 단순히 여러 테러 조직 중의 하나가 아니며 '제2의 이스라엘'을 꿈꾸며 칼리프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준군사조직으로 보며 IS의 정체를 파헤친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이슬람국가(IS)의 발현을 이렇게 설명한다. 2004년 선교사 김선일 씨를 참수한 '유일신과 성전(Tawhid al Jihad)'에서 파생한 IS는 2013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the Levant/al Sham)'라는 이름을 쓰면서 ISIL, 또는 ISIS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러다 칼리프(이슬람제국의 최고 통치자) 국가를 선포하며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로 이름을 바꿨다는 거다.

하지만 서방 국가와 언론은 IS를 국가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근 들어 ISIL나 ISIS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저자는 IS라는 이름에 현대판 칼리프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고 보고 IS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IS는 중동의 역사적 산물

연일 세계 언론을 장식하는 IS의 정체성은 대체 어떤 것일까?

알 카에다의 하부조직에 불과했던 IS는 갑작스레 생겨난 조직이 아닌 중동의 유구한 역사가 켜켜이 쌓인 데서 탄생한 산물이다. 그것은 지금의 문제가 지난 100여 년 동안 지속돼온 현대 중동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이는 서구가 처해 있는 가장 큰 딜레마다. 그래서 IS가 중동의 오래된 종파 대립, 아랍민족주의와 서구의 갈등, 칼리프에 대한 해석 문제, 천연자원 쟁탈, 아랍 보수 왕정과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터라는 여러 근본적인 요인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IS가 칼리프 국가 건설을 꿈꾸는 '국가(지향적) 세력'이라고 진단한다. 아직은 '의사 국가'(또는 유사 국가), 즉 사회경제적 인프라(과세, 고용 서비스 등)는 확보되는 반면 정치 인프라(영토와 주권)는 없는 국가일 수 있다. 하지만 IS는 이미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 일부 지역도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IS가 알 카에다처럼 산발적인 테러를 일삼는 과격파 무장단체가 아니라, 세계화와 IT 등 첨단기술에 의해 확장된 준국가로 본다. IS의 일차적인 목표인 현대판 칼리프 국가는 과거 자신들이 갖고 있던 토지(칼리프 제국의 영토)의 권리를 오늘날의 무슬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며, "비록 내가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주는 이슬람 신정일치 종교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통 무슬림 국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자 특유의 독자적 관점이다. 그는 칼리프 제국의 부활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의 목표와 같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은 IS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좌절한 전세계 젊은이들 유혹

칼리프 제국은 이미 세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IS집단은 옛 칼리프 제국의 일부 영토를 정복하고 석유를 확보하며 전기를 끌어오고, 무료 급식소를 설치하고 예방접종까지 해주면서 민심을 얻고 있기도 하다. 또 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국가와 '의사 국가'가 보유한 자원의 압도적인 격차도 줄일 수 있었다. 자체적인 선전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참가를 호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욱이 냉전 종식 후 세계가 다극화되었기 때문에 대리전쟁을 치르는 조직의 후원자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후원자의의 이해는 일치하지 않아 IS와 같은 과격파 집단에게는 주변 환경이 더 나아졌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제공하는 반면, 미국은 반아사드파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시리아에서, IS는 미·러 양측 모두의 무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인 인질 참수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참가하고 있는 다국적 연합전선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한계가 있다. 각국에 산재한 무슬림은 물론 자국 젊은이들조차 IS 전사가 되기를 워하는 풍토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김모 군 뿐 아니라 "취업활동에 실패한 일본의 한 젊은이가 IS에 참가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공무원도 가담했다. IS 지원자가 2000명에 육박한 유럽, 800명인 러시아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IS자원자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한때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미력을 느꼈던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양극화만 확대하면서 젊은이들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거기에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세계 각지의 불황과 뒤이은 유로존 위기는 여러 나라 젊은이들에게 열패감을 갖게 했다.

이 끝없는 좌절감을 타개해줄 노스탤지어가 일부에게는 칼리프 국가였는지도 모른다. 젊었을 적에 누구나 한번쯤은 품게 되는 공동체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금 세계는 'IS라는 미증유의 존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IS의 발흥을 막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제3의 길을 찾자는 호소만큼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 태생의 저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 및 국제경제학을 전공했고, 영국 런던정경대에서는 테러리즘을 주제로 연구를 했다. 한편 마드리드 클럽 산하 테러리즘 자금차단위원회 의장으로 세계 각국의 수장들과 함께 테러조직의 자금 루트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략을 도출했다.

한마디로 대테러 전문가다. 역자들이 신문기자 및 방송기자 출신인 점도 책의 밀도를 더해준다.

윤재석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