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동고등학교 안광복 교사

2015-03-03 21:31:45 게재

‘일상에서 철학하기’ 실천하는 임상 철학자

주말이면 남산도서관으로 향한다는 중동고등학교 안광복 교사. 그곳에서 책을 읽고 원고를 쓰는 일은 안 교사에게 삶을 다잡는 하나의 ‘리추얼’이 되었다고 한다. 속도를 추구하는 인터넷 시대에 도서관을 찾는 그의 행보에 어쩐지 철학자의 운치가 느껴진다. 10여 권의 철학책을 펴내 독자들에게 철학하는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는 그가 지난해 말 신간 『도서관 옆 철학카페』를 출간했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저자와 함께 현실에 대해 질문하고 사색하는 즐거움에 젖어봤다.


* 안광복 교사는
소크라테스처럼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는 임상 철학자로 꾸준한 저술과 강연으로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 중동고등학교에서 20년째 철학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 역사를 만나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자의 설득법』등이 있다.

 
* 『도서관 옆 철학카페』: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한 「성장을 위한 철학노트」의 원고를 저자가 새롭게 다듬어 출간했다. 책에는 저자가 공들여 고른 35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각각의 책들을 창조적 독법으로 읽어 새롭게 풀어냈다.
“검증된 양서는 지혜 창고와 같다. 고민을 입에 문 채로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라. 어떤 문제에 대해서건 훌륭한 해법을 얻어낼 것이다.” 철학교사인 저자에게 철학은 현실 문제를 싸워 이기게 하는 ‘무기’인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에게 전하는 철학 처방전
“모든 이해는 오해다.” 안 교사는 철학자 니체의 말로 『도서관 옆 철학카페』의 문을 연다. 얼마나 함축적인 말인가. 책을 펼친 순간 저절로 밑줄을 쫘~악 긋게 된다. 수많은 현실적인 갈등과 고민에 대한 해법이 이 한 문장으로 찾아진 듯했다.
안 교사는 자신의 독서법을 니체의 문장으로 대변했다. “어떤 책을 읽건 지은이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부터 헤아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놓인 문제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지를 가늠할 뿐이다. 나는 좋은 내용들을 오해(?)하며 읽는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눈앞의 사람들에게 절실한 철학 처방전을 안겨주기 위해서다.” 철학교사로서 매일매일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로 씨름하면서 그는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철학의 지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강남,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모 자식 간의 내적·외적 갈등은 극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회복불능 수준인 것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철학 처방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나의 꿈과 주변의 기대는 언제나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 중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말할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비록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부모와 의기투합해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특히 강남의 청소년들 중에는 부모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는 학생들이 많다. 이에 대한 안 교사의 조언을 들어봤다.
“강남 학부모들은 인생진도표가 정해져 있다. 대부분 ‘스카이·의대·로스쿨-대기업·병원-비슷한 배우자와 결혼’의 진도표를 따른다. 이렇다보니 입시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문과는 경영학과, 이과는 의대를 목표로 한다. 상식적으로 잘되는 장사를 따라하면 망한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해야 성공한다. 이미 무너진 인생진도표에 매달리니 대학졸업과 동시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실제로 대입 수시 서류를 보면 강남학생들은 스펙은 화려한데 내면에 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대학입시 관련 스펙을 갖고 엄마의 꿈에 맞춰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만의 고집불통이 되어버린 꿈은 주변을 힘들게 한다. 나의 꿈과 주변의 기대는 언제나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이 둘이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길이 차츰 뚜렷해진다.”

 사람 하나하나가 텍스트,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사람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과도한 학업에 매달리다보면 원만한 우정을 쌓기 어렵다. 심지어 공부를 위해서는 우정은 잠시 미뤄두라고 부모가 친구관계까지 통제하기도 한다. 공부와 친구, 양립하기는 힘든 것인가. 『도서관 옆 철학카페』의 곳곳에 우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갈등하는 친구관계, 어떻게 추구하면 좋을까.
“압구정 토박이로 강남에서 40년을 살았다. 대학과 군대에 갔을 때는 비강남권 친구들과의 문화격차를 아주 많이 느꼈다. 점점 사람 하나하나가 텍스트고,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정은 상대방에게서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호혜적인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지혜를 배우고 상대방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다가가면 좋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패를 통해 깨달음 얻어가는 숙달목표 지향해야
점수 자체가 곧 목적인 ‘평가 목표’와 주어진 과제를 더 잘하게 되는 것이 목적인 ‘숙달 목표’, 현재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매달리고 있을까. 또 부모는 아이의 성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며 성적에만 목을 매고 있지 않은가. ‘평가 목표’에서 ‘숙달 목표’로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에 20년 있어보니 좌절 총량의 법칙을 실감한다. 명문대에 간 아이들이 27세에 중2병같이 사춘기를 겪기도 한다. 망해보기도 하고 방황해보기도 해야 한다. 평가 목표를 향해 살아온 아이들의 특징은 당장 효과는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패배 경험을 지연시킬수록 나중에 파장이 더 크다. 최악은 성공의 성공을 거듭한 경우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늘 조바심이 있어 날이 서있다. 강남 자율고의 경우 반에서 30등정도의 학생들은 참 인간적이다. 실패를 경험해 본 아이들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깨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실패를 경험할 수 있게끔 도전해봐야 한다.”

 소외에 대한 불안은 엘리트 사회 진입을 위한 입장료
요즘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이 많이 쓰는 용어 중에 ‘잉여인간’, ‘아싸(아웃사이더)’가 있다. 소속된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소외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가난함이란 지금까지는 ‘갖지 못한 것’이었으나, 가까운 장래에는 ‘소속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라는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인간관계성 자산’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에 대해 안 교사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엘리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와 같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이 성적이 떨어질까 봐 제일 많이 걱정한다. 걱정이 문제가 아니라 걱정한 후 어떻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인간관계가 넓어진다고 마음속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깊은 관계야말로 충족감을 주는데 관계가 넓어질수록 깊은 관계를 맺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절친 한두 명이 있는 아이들이 가장 안정감이 있다. 깊고 굵은 관계를 맺으려면 공부할 때만큼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그런 경험이 별로 없다. 상대가 바람직하고 모범적이라면 우정은 배가되므로 사람을 가릴 수 있는 맑은 눈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보고 좋은 우정의 관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깊은 우정을 망가뜨리기 쉽다. 자기의 마음이 고프기 때문이다. 좋은 우정을 쌓으려면 부모와의 관계가 따뜻하고 좋아야 한다.”

 좁은 표적에서 넓은 표적으로 바뀌는 대학입시
2015학년도 대학입시는 수시 학생부전형이 크게 확대되었고 서류에 외부 스펙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수능은 어느 해보다 쉬웠다. 뛰어난 소수의 인재보다 기본적인 학력과 성실성을 갖춘 학생들에게 유리한 입시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입시변화에 대한 안 교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예전에는 대학 서열이 분명했는데 수능이 쉬워지면서 미국의 아이비리그처럼 대학 수준이 리그 양상을 보인다. 서울시내 10개 대학까지는 큰 차이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 좁은 표적에서 넓은 표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사회의 시각은 아직 스카이 중심이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명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에 관심 있는 사람은 차로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스카이만 바라본 사람들은 스카이로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른 학생들은 행복하다. 여기서 ‘성공’은 스카이 합격이 아니라 열심히 여한 없이 치른 입시를 말한다. 강남의 많은 학생들이 재수를 하는데, 목표 대학의 표적이 넓어지고 사회 인식이 바뀌면 재수 삼수가 의미 없어진다. 입시는 성장과업이다. 19세와 25세의 삶의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인생이 꼬이고 피곤해진다.”

현실에 맞닥뜨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해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임상 철학자 안광복 교사. 1시간 반 남짓한 인터뷰는 리포터에게 시간가는 줄 모른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면의 한계로 그의 철학적 지혜를 보다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선이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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