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여명 노동자목숨 앗아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참사 2주년

"인간답게 살고싶다" 슬픈 메아리만 …

2015-04-23 10:15:15 게재

공장주들, 노조결성 움직임에 협박·폭력 등 위협 … 정부 노조반려율도 55% 달해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가 붕괴되기 하루 전인 2013년 4월 23일, 거대한 균열이 건물 곳곳에서 발견됐다. 노동자들은 건물을 탈출했다. 그러나 다음날 공장주들은 그들에게 미싱틀로 돌아가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 정부와 공장주, 서구의 원청대기업들에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 호소하던 1100여명의 노동자들은 모래집처럼 순식간에 바스라진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참사 이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서구 정부와 의류 대기업들의 거센 압력을 받게 됐다. 이들은 의류노동자들에게 노조를 결성할 자유를 허락하라고 방글라데시 공장주들을 압박했다. 공장 안전조건 개선을 위한 전면적 조치의 일부였다.
2년 전인 2013년 4월 24일 붕괴 사고로 1100여명이 사망한 방글라데시 다카의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건물이 무너진 자리는 여전히 쓰레기 더미와 건물 잔해가 수북이 쌓인 황량한 공터였다. 사진 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국제산업노조(IGU) 공급망 조정자로, 의류노동자 권익향상을 돕고 있는 벤 반페퍼스트라테씨는 "위험한 일을 거부할 권리는 노조에 가입했을 때만 가능하다"며 "그러나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할 만큼 자율적인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라나플라자는 크고 작은 산재가 끊이지 않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라나플라자 참사 2년이 지났지만 노조기구와 인권기구들은 "노조를 조직하려고 노력하는 노동자들은 날로 늘어나는 협박과 괴롭힘, 육체적 학대에 노출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화장실 이용금지·임금체불 다반사 = 반페퍼스트라테씨는 "지난 6개월 동안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에 사측은 거대한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가 22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4500곳에 달하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가운데 노조 결성을 준비중인 곳은 10%도 안 된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규모는 한해 240억달러(26조원)로, 이곳에서 생산된 옷들은 월마트나 H&M, 프라이마크, 베네통 등의 상표를 달고 전 세계에 수출된다.

라나플라자 참사 2주년에 이틀 앞서 발표된 보고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무임금 초과노동을 강제받고 법에 명시된 산전산후 휴가를 쓰지 못하며 화장실 사용 금지나 임금체불, 임금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은 공장주나 용역깡패들에게 맞거나 협박을 당하고 겉으로만 그럴싸한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상황이다.

휴먼라이트워치 아시아 부국장인 필 로버트슨은 "노조 결정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폭력을 확인했다"며 "우리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왜 방글라데시만 콕 집어 비판하느냐'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건 노동자들'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글라데시 의류제조수출연합회 회장인 샤히둘라 아짐은 노조 결성자에 대한 학대를 부정했다. 그는 "라나플라자 참사로 의류산업계 전반이 전환점을 맞이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를 크게 높였다"고 주장했다.

아짐은 또 "많은 개선이 있었고, 기업가들의 마음가짐 또한 달라졌다"며 "그러나 하룻밤새 모든 걸 해낼 수 없으며 서서히 바꿔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사 이후 대부분 방글라데시 의류기업가들은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을 무차별 탄압하고 있다. 성장을 거듭하는 의류업종의 이익률을 떨어드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39세 노조지도자였던 아니물 이슬람은 납치된 뒤 살해당했다. 의류업계의 저임금을 비판하는 등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기나긴 투쟁을 이어나가던 인물이었다. 이슬람을 살해한 이들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노동활동가들은 그 사건을 바라보며 또 다른 선동을 중지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방글라데시 정부는 노사 갈등이 일어날 경우 사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사측은 정부에 대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이 노동자의 실제 임금을 크게 낮추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수년 동안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사측의 입장만 대변하는 정부 = 그러나 라나플라자 참사 이후 정부는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 가입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쉽게 만들었다. 이후 수백개의 새로운 노조가 설립됐다. 의류노동자연맹 나즈마 아크터씨는 "300곳 이상의 공장에서 노조가 결성됐는데, 이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노조 결성은 의류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다. 노동자 대다수는 도심 빈민가에 방을 구하기 위해 한달 월급의 절반을 지출해야 한다. 아크터씨는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모하칼리 지역은 인근 공장 폐쇄로 지난 2월 월급을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들이 교통을 막고 길에 주저앉아 시위를 벌이는 곳이다.

그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생계비를 보장하고 보건과 교육조건을 개선하며 노조결성의 자유를 허락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의류업계의 최저임금은 지난해 12월 77% 인상된 월 5300타카(68달러, 7만3691원)다. 상당수 공장주들은 이마저도 맞춰주지 않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반페퍼스트라테씨는 "정부당국과 공장주들은 노동자를 탄압하던 구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짐씨는 "현재 90곳의 공장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진행중에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의 노조승인 반려율이 2013년 15%에서 지난해 33%, 올해 현재 55%로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페퍼스트라테씨는 "노동자들에게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며 "국내 노동운동가들은 압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고, 국제적 관심은 저물고 있고 처벌받지 않는 폭력은 다시 횡행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