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 정지혜 휴브 대표

"생활체육엔 빈부격차 없어야죠"

2015-06-26 11:08:18 게재

정지혜(28·사진)씨는 '휴브(HUVE)'라는 스포츠 소셜벤처(사회적 벤처기업)의 대표다. 휴브는 대중스포츠 활성화를 목표로 2013년부터 준비해 올해 3월 법인설립한 따끈따끈한 청년기업이다.

정 대표의 현재 사업대상은 초등학생 아이들이다. 학원 과외에 쫓기느라 모여 놀기 힘들어진 아이들, 형편이 어려워 지역아동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코치를 보내 직접 개발한 놀이체육 프로그램을 가르치며 함께 뛰놀게 하고 있다.

넓은 운동장이나 비싼 장비, 복잡한 규칙 없이도 일상 속에서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한 종목이 100여가지에 달한다.

정 대표는 원래 대학시절 스포츠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저변이 빈약한 생활체육이 엘리트스포츠를 뒷받침하지 못해 국내 스포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함을 알게 됐다.

생활체육에도 빈부격차가 있음을 느끼면서 고민은 깊어졌다.

정 대표는 학교 공부를 하며 일주일에 2~3번씩 주말체육 학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강남의 부유층 아이들을 상대로 새벽마다 축구, 체조 같은 운동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자식교육에 극성인 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관리에도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번듯한 시설, 체계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자동차들이 수시로 오가는 삭막하고 위험한 골목에서 아무 보살핌 없이 노는 자신의 동네 아이들과 대조적이었다.

"왜 움직이는 일 자체에도 빈부가 있어야 하나" 싶었다. 생활체육은 그에게 스포츠산업이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활동권 보장의 문제가 됐다.

대학졸업 후 다니던 스포츠마케팅 업체를 그만 둔 정 대표는 이후 사회적기업 공부에 집중했고 2013년부터 사업을 준비했다.

먼저 눈에 띈 곳은 지역 아동센터였다. 40~50대 여성 선생님이 대부분이다보니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한다며 종종 찾아왔지만 비디오를 틀어놓고 동작 따라하기 놀이 하루 하고 끝나는 식이었다.

각지의 아동센터를 돌며 이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반응은 갈렸다. 저소득층 부모가 많은 센터일수록 아이들의 '책상공부' 요구가 생각보다 높았지만 '아이들은 움직이며 놀아야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소신을 가진 곳도 적지 않았다.

휴브는 지난해 8월 서울 창신동 봉제마을 아동센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휴브 코치들은 45명 아이들을 3팀으로 나눠 함께 뛰놀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불과 몇 달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산만하고 문제행동을 하던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앙숙이던 여학생들이 어느새 '절친'이 됐다. 잘 움직이지 않아 비만이던 아이들도 체중이 줄었다.

휴브는 현재 전국 13개 지역 아동센터와 협력해 각 동네마다 현역 체육학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코치를 파견하고 있다.

정 대표의 목표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많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체육이 활성화되면 기성세대를 상대로도 국내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외국 팀스포츠를 도입해 전파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운동은 건강권과 직결되는 인권의 문제"라며 "돈이 적고 많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일상 속에서 체육을 즐기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이재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