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반환점, 경제공약 점검│① 경제민주화

대선 대표공약, 당선 후엔 '뒷전' … 흐지부지된 재벌개혁

2015-08-24 11:29:59 게재

경제활성화 앞세워 재벌 대기업 중심 성장정책으로 회귀

핵심과제 사실상 중단 … "경제민주화야말로 성장정책" 비판도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그 이미지는 많이 퇴색했다. 대선에서 한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까닭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흐지부지됐고, 복지공약은 후퇴했다. 노동개혁은 공약과 거꾸로 추진되고 있다.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맞는 박 대통령의 주요 경제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중간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표 공약이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바꾸겠다'던 약속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고, 박 대통령 당선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임기 절반에 다다르도록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의 상당부분은 흐지부지 돼 버렸고, 그나마 이행된 공약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일찌감치 경제민주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제는 의지조차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집권 이후 경제부진이 지속되면서 조급해진 박근혜정부가 재벌 대기업에 기댄 성장정책으로 회귀하면서 경제민주화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공약 일부만 이행, 그나마 실효성 의심 = 박 통령 취임 이후 경제민주화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고, 대기업집단의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됐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공정거래 관련 법집행체계가 개선됐으며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범위 확대 및 신속사업조정제 도입, 대형유통업체의 납품·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와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행위 근절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조치가 이뤄졌다. 최근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금융회사 전반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제시했던 것에 비하면 임기 절반 동안의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최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행평가'에 따르면 박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6개월 동안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의 단순이행 평가는 33.5점을 받는데 그쳤다. 그나마 이행된 공약의 내용을 뜯어보면 실효성이 의심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재벌 총수의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경우 부당지원 사실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3장(경제력집중 억제)에 신설하는 대신 5장(불공정거래행위 금지)에 추가하는 수준에 그쳤고, 광범위한 예외 사유를 인정하는 등 당초 박 대통령이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밝혔던 내용에서 대폭 후퇴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중소기업청장과 감사원장, 조달청장 등에게 확대하는 수준에 그쳤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적용대상에서 공정거래법을 제외해 효과가 반감됐다.

중소도시 대형마트의 신규입점시 지역협의체에서 합의된 경우에 한해 허용함으로써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던 약속도 절반만 지켜졌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지역협의체를 의무화했지만 합의시에만 신규입점을 허용한다는 내용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역시 사실상 쓸모없는 법이 돼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해서만 시행되던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를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했지만 심사대상을 최대주주 1인으로 한정하고 심사대상에서 적장 중요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을 쏙 빼버린 까닭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실효성까지 따져 매긴 공약이행점수가 20.5점에 불과했다.

중단된 재벌 지배구조 개선 = 형식적으로나마 이행되지 못하고 중단돼 버린 공약도 많다.

박 대통령은 소액주주 등 비지배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및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중단됐다. 이 공약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직접 책임추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한 합병,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등에서 드러난 재벌의 전근대적 소유·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이 제시했던 해법인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정부의 상법개정안은 국회에 제출조차 되지 않았고, 이제는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 도입 등 핵심공약들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앞으로 이행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박 대통령이 일찌감치 경제민주화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반년도 되지 않은 2013년 6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나 입법이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시해 '경제민주화 과잉입법'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해 7월 임시국회 종료 직후에는 "경제민주화 주요 법안 7개 가운데 6개가 통과됐다, 그래서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경제민주화 조기 종료' 발언을 했다. 2013년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는 발언 이후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박 대통령의 언급을 찾기 힘들다.

경제개혁연구소 강정민 연구원은 "박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강해 비록 인기를 모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제민주화를 약속한 것이라 해도 공약한 것만큼은 지킬 것이라 기대했다"며 "하지만 상당수 공약은 흐지부지된 상태고, 추진된 공약도 대부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는 수준을 넘어 '역주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등 기존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으로 회귀한 지 오래됐다는 관측이다.

경제민주화 역주행 하는 박근혜정부 = 최근 광복절 특별사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박 대통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14명의 경제인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담합 대형건설사 등 2000여개 건설업체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 행정제재도 풀어줬다.

당초 박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은 경제민주화 관련 다른 공약들이 파기되거나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유일하게 지켜져 왔다. 하지만 임기 절반에 다다른 시점에서 이마저도 내팽개치고 말았다.

문제는 재벌 대기업에 기댄 경제정책으로 회귀한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의 한계는 이명박정부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명박정부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완화 등 지원정책을 폈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없었고, 심화된 양극화는 소비여력을 위축시켜 되레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재벌 대기업의 횡포와 불공정행위를 막고 성장의 과실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소비자 등과 골고루 나누겠다던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에 국민들이 환호했던 이유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하려면 대기업에 쌓아둔 돈이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에게 흘러가도록 해 총수요를 살려야 한다"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야말로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정책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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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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