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조선 분식회계 관행 우회적 인정"

2015-10-29 11:08:34 게재

금융당국 회계투명성 강화 방안 … 회계법인 대표도 중징계, 대우조선해양 소송에 영향

금융당국이 건설과 조선 등 수주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사실상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이들 업계의 분식회계를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금융위는 28일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수주산업을 중심으로 장부상 이익이 일시에 대규모 손실로 전환되는 소위 '회계절벽' 현상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며 "회계절벽이 반복될 경우 선량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고 회계 신뢰성이 의심돼 궁극적으로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훼손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조사결과 2013년과 2014년 500억원 이상의 거액 영업손실이 일시에 발생한 '회계절벽'에 해당하는 상장법인이 36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주요한 원인은 업계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결론이다.

일반회계는 물건을 판매하는 시점에 수익을 인식하지만 계약건설 등 수주산업은 '공사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배분해왔다. 공사진행률을 추정해 수익에 반영하는 구조다. 하지만 공사진행률은 공사가 실제로 진행된 정도가 아니라 총예정원가에서 지금까지 얼마의 원가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회계기준서상 '투입원가율'(투입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술력과 경험부족으로 총예정원가를 과소추정할 경우, 공사진행률이 높아져 당기수익이 과대평가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청구공사금액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미청구공사는 원가투입량이 실제 공사진척률보다 높아 사실상 청구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처럼 과대평가된 수익이 누적되면 특정시점에 손실이 대규모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회계절벽'과 관련해 합리적 원가추정과 즉시 회계처리가 이뤄졌음에도 발생한 불가피한 '회계추정의 변경'은 정상적인 회계처리라고 보는 반면 자의적 원가추정, 회계처리 고의지연으로 발생한 '회계오류의 수정'은 분식회계라는 입장이다.

분식회계혐의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건설에서 계약원가를 지나치게 낮게 추정했으며 원가점검 시스템이 없어 급격히 증가하는 예산 초과 공사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손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의 송가로부터 반잠수식 시추선 4척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기 지연으로 상당한 손실이 발생했는데 회사가 설계변경으로 투입된 비용을 손실로 즉시 인식하지 않고 계약수익으로 계상했다. 정부가 밝힌 기준으로 보면 분식회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번 금융당국의 대책발표가 소송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투입원가율을 적용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추정의 합리성'을 제시할 수 있도록 관련 회계처리 정보를 공시하고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추정의 합리성을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 발생원가 범위 내에서 수익을 인식하는 '원가회수법'을 적용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해외플랜트 수주는 '원가회수법'을 적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공사설계변경 등의 사유로 공사예정원가가 증가할 경우 총예정원가에 즉시 반영하고 주요 사업장에 대해서는 분기단위로 총예정원가를 재평가해 내부감사기구에 보고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주요사업장별 중요정보 공시를 확대하고 공사진행률·미청구공사액 변동내역 등 회계추정의 변경내용도 공시하도록 했다.

회계부정이 발생한 회사와 회계법인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재는 여러 건의 위반행위가 유사하면 가장 과징금이 큰 1건에 대해서만 금전 제재를 했지만 앞으로는 개별적으로 과징금이 부과된다. 공시종류가 같은 분식회계 사항이 포함된 사업보고서가 3 차례에 걸쳐 제출됐다면 건당 최대 과징금 20억원씩 6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비상장법인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도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추진될 예정이다.

회계법인의 부실감사가 드러나면 회계법인 대표이사가 중징계 대상이 될 예정이다. 현행법에도 대표이사의 감독책임이 명시돼 있지만 구체적인 징계수위의 기준 등이 없어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양정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혐의가 드러날 경우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 대표에 대해서도 중징계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로펌에 근무하는 한 회계사는 "그동안 건설과 조선사들이 총예정원가를 과소계상해 공사수익을 과대평가해 왔고 현행 회계기준도 업계관행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 회계처리를 해 왔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며 "긍융당국이 건설사나 조선사의 분식회계 관행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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