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금자 해인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진정성 있는 공익소송 변호사 갈수록 찾기 어려워"

2015-11-06 10:58:10 게재

굵직한 공익소송마다 앞장

담배소송 15년 '최장 무료변론'

"이제는 바리스타 변호사입니다."

5일 사무실에서 만난 배금자(54·해인 법률사무소 대표·사진) 변호사가 손수 탄 원두커피를 권하며 웃었다.

그에게 갖은 고생과 유명세를 안겼던 담배소송, 그리고 지난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달래려 지난해 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단다.

배 변호사는 담배소송 외에도 변호사 생활 25년간 굵직굵직한 공익소송들을 맡으며 인권분야에서 이름을 알려왔다.

1990년대 초에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결성될 무렵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권보고서를 최초로 작성, 유엔 인권보고관이 직접 방문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1992년에는 12년간 의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온 여성이 의부를 살해한 이른바 '김보은 사건'에서 변호를 맡아 가정 내 성폭력범죄에 대한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가정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있게 된 데는 배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이밖에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통해 성희롱이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도,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야기해 온 윤락행위방지법이 폐지되고 성매매방지특별법 제정된 것 역시 그의 노력에 힘입은 결과다.

남한에 가족을 둔 북한주민의 재산 상속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도 배 변호사다.

그는 "한국전쟁 1·4후퇴 당시 북한에 자녀를 두고 남한으로 피난 온 이산가족 중 북한의 자녀에게 재산이라도 물려주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 관련 소송을 추진, 승소했다"며 "(북한이) 헌법상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라 상식적으로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공개변론 한 번 없이 원고패소 판결한 담배소송 상고심에 대해서는 "소송 이후 독극물, 마약이나 다름없는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관련정책도 강화되고 있는 만큼 결국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송곳이 자루를 뚫듯 전례 없는 소송들을 연거푸 치른 탓일까. 배 변호사는 "단순히 착오나 사고로 보기 어려운 '이상한 일들'을 계속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담배소송 과정에서 그는 하루도 마음편히 지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유없이 사무실 인터넷 회선을 누군가 반복적으로 절단하는가 하면 멀쩡하던 휴대전화 통신도 툭하면 끊어졌다. 사무실 컴퓨터가 해킹을 당해 다운되는 일도 수차례 있었으며 멀쩡한 사무실 전화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2010년 담배소송 고등법원 선고를 앞뒀을 대는 모 로펌이 "공동대표로 모실 테니 몸만 오시라"고 권유,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말을 바꿔 사무실까지 비운 배 변호사를 한동안 오갈 데 없는 신세로 만들기도 했다.

배 변호사는 "15년간 무료변론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지만,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힘든 일들이 계속 잇따르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저작권에 관한 사건과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미인도 위작' 사건 후 세상을 떠난 고(故) 천경자 화백 유족들의 법률대리인를 맡고 있기도 하다. 배 변호사는 "화가 본인이 위작임을 밝히고 그림을 위조했다는 사람의 진술이 나왔음에도 아직까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며 이 분야에서도 국가에 의한 개인탄압이 존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그는 자신이 부딪혀왔던 사회문제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펴냈다. 제목은 '정의는 이긴다'.

배 변호사는 "진정성을 가지고 공익소송에 몸을 바치는 변호사가 필요하지만 갈수록 찾기 어렵다"며 후배 변호사들이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공익적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이재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