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물림된 아동학대 … 부천 초등생 아버지도 "맞고 자랐다"

2016-01-19 11:49:45 게재

피해아동 엄마도 방임 속에서 자라

'체벌이 적절한 훈육' 왜곡된 인식

경찰 '부작위 살인죄' 적용 검토

7세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충격을 준 부천 초등생 사망사건도 아동학대의 대물림이 또다시 나타난 사례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맞고 자란 아이가 때리는 부모가 되는' 아동학대의 대물림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인천에서 11세 소녀가 집에서 탈출한 사건의 아버지도 부모의 학대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부모교육 의무화, 체계적인 아동보호 제도로 사각지대 없애기, 가해자에 대한 엄벌,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 제고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어린이를 찾습니다" | 정부는 경기도 부천 초등학생 시신 훼손 사건 등을 계기로 올 하반기부터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담임교사의 실종 신고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사진은 18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인근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실종아동을 찾는 전단지.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나도 어렸을 때 체벌받아 다친 적 있지만 병원 간 적 없다" = 18일 부천 초등생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최군의 아버지 최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벌을 많이 받았다고 진술했다.

수사에 투입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와 문답 도중에 나온 말이다. 최씨는 '2012년 10월 아들을 욕실로 끌고 가다가 아들이 넘어져 다쳤는데도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느냐'는 질문에 "나도 어머니에게 체벌을 받다가 다친 경우도 있지만 병원에 간 적은 없다"며 "아들이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원미경찰서측은 "(숨진 최군의) 부모 모두 방임과 무관심 속에 성장해 심리적·사회적으로 매우 고립된 삶을 살았다"며 "체벌과 제재만이 적절한 훈육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프로파일링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은 피의자들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적 성향보다는 극단적인 이기적 성향, 미숙한 자녀양육 형태, 경제적 상황이 복합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잠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세대간 폭력 대물림 '전형적' = 피의자들이 자신들의 범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런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실제로 학대를 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해자 부모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던 경험을 고백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약 2년간 아버지와 동거녀 등에게 쇠파이프로 맞고 세탁실에 갇히는 등 상습적인 학대를 당하다 지난해 극적으로 탈출한 인천 11세 소녀 사건에서도 아버지는 과거 자신도 비슷한 학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때 역시 아버지가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전문가들은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비율이 높다고 말한다.

이웅혁 교수(건국대 경찰학과)는 "세대간 폭력의 대물림은 전형적인 형태"라면서 "가해자 입장에서 보면 가장 어린 시절에 가장 의미있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폭력을 배워 나이 들어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주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누구나 준비된 상태에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부모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이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만약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부모로부터 아동을 격리해 적절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장기결석 학생 수사 = 경찰은 부천 초등생 사건과 관련해 아버지 최씨에게 부작위 살인죄(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아들이 다쳐서 앓고 있는데 방치할 경우 죽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를 예견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부작위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경찰관 2명을 법률지원팀으로 구성해 이 사건과 관련한 법리를 검토중이다.

'제2의 최군'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중이다. 경찰은 교육부 등으로부터 신고된 장기결석 학생 8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수사중이다.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진술을 한 부산의 초등학생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고, 나머지 7명 학생의 부모에 대해서도 확인작업중이다.

그 외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어 교육부가 취학독려 조치를 한 75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교육적 방임도 아동학대"라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면서 들여다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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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송은경 기자 ek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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