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제, 부실대출 키운다"

2016-01-22 10:38:56 게재

미국서 실증적 연구, 부도율 높아 … 영국 '불완전판매 우려' 연구 진행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의 보수·인사·평가·교육시스템 전반에 성과주의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혀 '성과주의' 도입이 올해 금융권에 중요한 쟁점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금융회사들의 성과주의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며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효과와 부작용을 검증하고 있다. 특히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금융권의 인센티브 확대가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지난 2012년 전신인 FSA 시절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도입 자체를 안할 수는 없지만 검증과 다각도의 방법을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8월 미 전미경제연구소(NBER) 조사보고서에는 '대출담당자의 인센티브가 느슨한 대출 기준으로 이어지나?'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이 게재됐다.

수밋 아가르왈(Sumit agarwal) 시카고 연방준비은행(FRB) 연구원과 이차크 벤 데이비드(Itzhak Ben David)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가 공동으로 쓴 이 논문은 대출담당자에 대한 성과급제도 도입이 부실대출의 증가를 초래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논문은 미국의 한 대형 상업은행이 대출담당자에 대한 보상체계를 고정급에서 성과급으로 바꾸었을 때의 자료를 기초로 분석했다. 은행 경영진들이 뉴잉글랜드 지역본부의 중소기업대출 담당자 130여명을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예비시험)를 실시한 자료가 바탕이 됐다.

130여명의 대출담당자들이 24개월간 취급한 3만건의 중소기업대출 심사자료를 보수체계 별로 비교했더니 성과급 대출담당자의 대출승인율이 고정급 대출담당자에 비해 약 31% 증가했다. 대출승인규모도 약 14.9% 컸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약 2.4%p 높았다. 부도율은 28%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출승인 여부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회색지대 차주에 대한 대출승인이 현저히 증가했다. 성과급 수령자의 대출승인율은 매월 하반기에 상반기 보다 2.9%p증가했는데 연구자들은 월별 성과급을 수령하기 위해 월말에 승인금액을 늘린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취급되기 어려웠을 대출에서 집중적으로 연체율이 높게 나타났다"며 "성과급을 지급받은 담당자가 승인한 대출 중 대출금액이 과다한 대출에서 차주의 파산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영업실적만을 기준으로 한 성과주의는 금융회사와 소비자의 이익과 상충할 수 있다"며 "과거 동양사태나 최근의 주가하락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ELS 투자자들 모두 금융회사의 실적주의가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영국 FCA도 지난해와 올해 대출담당자의 인센티브 제도를 분석하고 있다. FCA는 금융회사의 부당한 인센티브 제도가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2012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금융회사들이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높은 판매 실적을 요구함에 따라 판매직원들은 고객을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FCA는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 금융회사들이 인센티브 제도에 내재된 불완전 판매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센티브 제도가 너무 복잡해 경영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영진의 보너스가 판매직원의 실적에 따라 결정돼 이해상충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FCA의 전신인 FSA는 지난 2013년 로이드은행이 공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판매직원의 부실판매를 유도했다며 2800만파운드(한화 약 48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70만명의 피해 고객에게는 1억파운드(한화 약1719억원)의 손해배상 명령을 내렸다. 또한 경영진에게 이미 지급된 보너스를 환수하는 명령도 내렸다.

유럽은행감독원(EBA)은 은행들의 보너스 지급을 규제하고 있다. 보너스가 기본급의 2배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대형은행은 보너스를 장기간에 걸쳐 분산·지급해야한다는 것이다. 소형은행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예외를 폐지하기로 했다. 은행의 과도한 위험추구를 방지하기 위해 규제를 유럽지역 모든 은행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국내은행들은 대출담당자들의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경영진에 대해서는 은행 실적과 연동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곳이 있지만 실적 부진에 따른 환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1999년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한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많다"며 "미국과 유럽이 금융규제를 점차 강화하는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는 각종 규제를 풀고 있는데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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