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개인회생 브로커 활개

2016-03-15 11:25:43 게재

변호사 명의대여·대부업체 알선 … 법조계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서

변호사 자격이 없는 A(53)씨는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2020여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해주고 31억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챙겼다. 대신 A씨는 명의대여 대가로 변호사에게 매달 300만원을 줬다. A씨는 6개월 내지 1년 단위로 변호사 사무실을 옮겨 다니며 사건을 처리했다. 수임료가 없다는 의뢰인에게는 대부업체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조재빈 부장검사)는 13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지난 12월 인천·경기도에서도 법조브로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인천에서는 변호사·법무사 행세를 하면서 482억원을 챙긴 법조브로커 76명이 적발됐다. 이 중28명은 구속기소됐고, 나머지는 불구속기소됐다.

경기도에서는 B(48)씨가 같은 법무법인에 소속된 사무장 3명과 공모해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339건의 개인회생·파산 사건을 처리해주고 5억원이 넘는 수임료를 챙겼다가 덜미를 잡혔다.

수원지검 특수부(이용일 부장검사)는 지난해 12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B씨를 구속기소했다.

변호사법 제109조는 변호사 아닌 사람이 금품·향응 등 이익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고 소송 사건은 물론 비송 사건(개인회생·파산 등 소송 절차에 의하지 않고 법원이 처리하는 사건)에 관해 상담·법률 문서 작성 등 법률사무를 취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변호사나 법무사 등과 짜고 사건을 수임 받아 처리하는 법조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인회생 분야의 특성과 법조시장 불경기가 맞물린 탓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변협 이효은 대변인은 "개인회생 사건은 절차가 간단하고, 반드시 변호사가 해야 할 수준의 업무가 아니다"며 "과거에는 변호사들이 관심 갖는 영역이 아니었는데, 최근에는 법조시장이 어렵다보니 명의를 빌려주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최웅영 파산공보관은 "개인회생 분야는 수임료가 낮아 그동안 변호사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이런 점이 브로커들이 활동하게 된 배경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뒤늦게 불법 브로커 근절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불법 브로커 개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크 제도'를 도입했다. 대법원도 이 제도의 확대 실시를 검토 중이다.

법무부는 법조브로커 근절 태스크포스(TF)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달 말 3차 회의를 앞두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1·2차 회의를 진행했는데 지난해 말 사시존치 논란에 휩싸이고, 최근 간부 인사를 겪으면서 답보상태에 있었다"며 "TF 내 이해당사자가 다양해서 대책을 내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초동에서 개인회생 업무를 주로 하는 법률사무소 미래로의 이은성 변호사는 "개인회생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은 게 사무장이냐는 질문인데,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관계당국도 당장은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은 가급적 법률전문가와 직접 접촉하기를 권유한다"고 말했다.

장승주 기자 5425@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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