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운전 등 분노범죄 증가세 왜?

사회구조적 문제로 '자존감 훼손'… 상담치료 필요하지만 거의 '방치'

2016-03-18 11:07:28 게재

지난 11일 부산 양정동 한 대학 앞 중앙대로에서 시내버스간에 시비가 붙어 추격전을 벌인 끝에 교통사고까지 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아침 10시 30분경 시내버스 운전기사 김모(46)씨는 정류장에 진입하기 위해 차선을 변경하려 했지만 같은 차로에 있던 다른 시내버스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김씨는 1킬로미터 가량 상대 버스를 쫓아갔고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바꾸며 진로를 방해하는 등 난폭운전을 했다. 김씨의 버스에는 승객이 10여명 타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씨는 상대 버스 옆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내 운전기사 이모(41)씨를 내리게 해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경찰에 불구속입건됐다. 경찰이 지난달 15일 이후 난폭·보복운전에 대한 특별단속에 들어간 이후 적발된 사례 중 하나다.

난폭·보복운전은 흔히 분노범죄의 하나로 분류된다. 층간소음을 이유로 이웃과 다투다가 살인까지 하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묻지마범행도 분노범죄에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2010년대 들어 늘어나고 있는 분노범죄의 근저에는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이 있다고 봤다. 마음 속 분노를 제대로 푸는 방법을 알지 못해 왜곡된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까지 나를 무시하느냐" =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현대인의 분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심포지엄에서는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진단이 잇따랐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존감이 훼손된 개인이 왜곡된 형태로 분노를 드러내는 것(권일용 경찰청 경감),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서 무력한 취약한 자신을 권력을 행사하는 자신으로 변형시키려 하는 것(안용민 서울대 교수)이라는 분석 등이 나왔다.

권 경감은 "분노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해 보면 자존감이 훼손된 상황에서 너까지 나를 무시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격한 상황에 다다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면서 "우리 사회의 분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분노조절장애를 보이는 범죄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분노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약자를 상대로 표출한다"면서 부천에서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아버지 예를 들었다. 아버지 최씨는 경찰 프로파일링 결과 분노조절에 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경감은 "부천 아버지뿐만 아니라 이런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너무 고립된 형태의 삶을 살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자기 문제를 상의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됐고 어떻게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분노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특히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하지만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거의 방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분노조절장애 및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 2012년 미국에서 3만500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17% 정도가 충동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교육수준이 낮고 젊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충동적 경향이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용민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다른 정신장애는 없지만 공격적인 행동이 주2회 이상, 3개월 이상 반복되면 간헐적 폭발성 장애로 진단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준도 명확히 서 있지 않고, 실제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례도 축적되어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분노조절 연구, 상담사례 없어 = 분노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원인분석을 통해 대처방안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변협 오은경 사무차장은 "일본의 경우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국가적 차원의 연구를 통해 과로사 실태와 원인을 분석해 대처했다"면서 "우리나라도 조사연구를 통해 폭발할 정도로 강한 분노에 사로잡히는 원인, 분노조절장애의 양상 등을 밝혀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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