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권자들이 희망에 투표하는 선거

2016-03-30 14:28:32 게재
채 2주도 남지 않은 4.13 총선. 각 정당의 후보 확정 과정은 흔히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 못지않았다. 청와대의 심기가 곧 당의 정체성으로 작동하는 집권여당에서는 정책적 차별성이 없는 비박, 친박, 진박이라는 이름으로 살벌한 전쟁을 치렀다. 두 거대정당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반영하거나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비례대표 취지도 내던져버렸다. 찍어 내리기식 공천도, 인지도 혹은 인기투표 수준의 여론조사 경선의 다른 이름인 상향식 공천도 공정성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총선을 유권자도, 정책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렸다.

더 고약한 것은 다가올 미래다. 집권여당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4년 전만 하더라도 총선,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민생안정,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며 유권자들에게 한번만 더 도와달라고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대로다. 수많은 공약파기와 뒤집기, 최고치를 찍은 청년실업률, 가계부채, 노인빈곤, 그리고 전월세 폭등 등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해고 수반되는 기업 구조조정 추진

새누리당은 청와대 주문사항을 착실히 담고 있는 공약을 내놓았다. 일부 교육감들이 국가정책과 갈등을 빚고 있다며 교육감 직선제를 바꾸는 대안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4년 전 공약을 뒤집어 국회가 국가정책을 원활하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이 지적했던 '무분별한 의원입법'을 규제할 계획이다. 총선 이전에 처리하지 못한 노동관계법 개악과 쉬운 해고 등 양대 지침을 발 빠르게 추진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집시법을 개정해서 0시-6시 야간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번에는 착실히 이행할 것 같다. 청와대와 각을 세운 세력들을 짓누를 수 있는 공약이기에.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이 국회를 집권연장을 위한 도구로 쓰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지원하는 국회, 국회 입법권을 제약하는 정부의 시행령 통치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제 더 이상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말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해 대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더 투자하고 지원해야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살고,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거기에는 대규모 해고가 수반되는 기업 구조조정과 대기업에 쏠리는 R&D 예산 지원도 포함된다.

야당들이 내세우는 경제실정 심판만으로 차별성 있는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떠올리기 어렵다. 더민주당의 경우 자신의 존재만으로 경제민주화를 대변한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위태로운 경제를 어떻게 회생시키고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지, 일자리가 없거나 비정규직에 내몰리는 청년들이, 주거비, 교육비, 보육 부담에 허리가 휘는데 노후까지 걱정해야 하는 청장년층이 단박에 떠올릴만한 정책은 아직까지 가시적이지 않다. 당권 장악보다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미래, 새로운 시작 꿈꿀 수 있도록

정치의 수준은 결국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관심이 덜 하거나 참여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신들만의 이해를 다투는 리그로 선거판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로만 선택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저렇게 인선된 후보들이 과연 민의를 대표할 수 있을지. 침몰 직전의 한국 사회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의 삶을 돌보는 데 노력할 정당인지 제대로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엉망이어도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착각으로 만들어버려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희망에 투표하는 선거. 그래야 고약한 미래라도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