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골드러시(금 매입 열풍)' … 종착역은 어디일까?

2016-04-07 11:24:14 게재

달러패권 쇠퇴 알리는 전조 … "IMF 특별인출권, 곧 기축통화 된다"

1930년대 세계 금융위기 때 각국 중앙은행과 일반인들은 금을 가치저장수단으로 삼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종잇돈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 전략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은 "달러중심 경제시스템에 막대한 부채가 쌓이고 있는 요즘, 금이 제대로 대접을 받을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며 "일부 나라의 중앙은행이 금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주장했다.


현재 달러는 더 이상 금과 연동되지 않는다. 1971년 8월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44년 성립된 브레턴우즈체제를 일방 파기했기 때문이다. 닉슨은 당시 재무장관 폴 볼커와 그의 후원자였던 체이슨맨해튼은행의 데이빗 록펠러의 강력한 주장으로 그같은 조치를 취했다. 닉슨은 금-달러 연동을 끊어내면서 "무역상대국인 프랑스와 독일 등이 막대한 양의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면서 연방금고의 금 보유량이 고갈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필요가 없게 된 1971년 이후 미국은 달러를 의지대로 찍어냈다. 현재까지 40여년 동안 미 연준의 달러 발행액은 2500% 늘었다.

1973년 석유파동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석유달러'(Petrodollar)를 고안해냈다. 달러의 가치를 금이 아닌 석유에 묶어놓겠다는 것이었다. 국제유가는 몇달 새 400% 급등했다. 독일과 프랑스 남미 등 대부분의 나라가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달러를 사야 했다. 1975년까지 독일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화폐로 중동의 석유를 수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의 입김 아래 놓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결제대금으로 미 달러만 받겠노라고 선언하면서 석유를 수입하는 모든 나라는 달러를 사야만 했다.

2014년 9월 이후 국제유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배럴당 103달러로 치솟았던 유가는 현재 3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바꿔 말하면 석유를 구입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페트로달러 수요가 70% 이상 줄었다는 의미다.

이같은 정치금융적 맥락에서 러시아와 중국 중앙은행이 재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례없는 속도로 금을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 인민은행은 기존 달러가치에 연동시켰던 위안화를 유로화 중심의 통화바스켓에 묶어버렸다. 엥달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활을 건 금 확보전은 달러중심 경제시스템의 거대한 전환을 알리는 전조"라고 강조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금괴보관실에 보관돼 있는 금. 사진출처 : 분데스방크 홈페이지

미 국채 팔고 금 사들이는 러시아 = 러시아경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주류적 시선은 유가급락과 달러대비 루블화 가치하락에 꽂혀 있다. 하지만 러시아중앙은행은 지난해부터 조용히,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금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1월 러시아는 22톤의 금을 사들였다. 시세로 8억달러(9280억원)어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와 유가급락으로 인한 수입감소 상황이 무색하다. 이같은 움직임은 11개월 연속된 것으로, 2015년 러시아는 208톤을, 2014년엔 172톤의 금을 사들였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러시아의 금 보유고는 1437톤으로, 세계 6번째 금 보유국이다. 나라별 순위는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이 1~5위를 기록중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러시아가 미 국채를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달러패권을 벗어나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환율전쟁을 통해 러시아 루블화를 지속적으로 공격중이다. 2014년 1월 러시아는 미 국채 1320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현재 920억달러로 줄였다.

러시아는 국제시장에서 금을 사들이는 것은 물론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금도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인 엘비라 나비울리나는 최근 "외부세계의 불안정성에 직면해 러시아의 금융안정성을 꾀하는 차원에서 금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1990년대 초 옐친 대통령 시절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해 대부분의 금을 소진했다. 하지만 중국에 이은 세계 2대 금매장 국가로서 러시아는 빠르게 금을 확보하고 있다.

서구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경제체력이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18%다. 미국의 103%, 유로존 국가 평균 94%, 일본 200%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엥달은 "미국 재무부의 영향 아래 있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러시아 신용등급을 쓰레기 수준으로 평가하며 '실패한 국가'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며 "하지만 러시아는 서구 어느 나라보다 경제적 체력이 건강하다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도 동참 =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금 확보기세도 러시아에 뒤지지 않는다. 중국은 지난해 중반부터 꾸준히 금을 모으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 40개월 연속으로 금을 늘려나가고 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경제연합(EEU) 회원국이다. EEU는 서유럽 국가 중심의 유럽연합(EU)에 대응하는 기구 창설을 위해 러시아가 중심이 된 옛 소련권 국가들의 연합체로,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 모두 5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은 지난 1월 17톤의 금을 시작으로 올해 모두 215톤의 금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중국은 101톤의 금을 모았다. WGC에 따르면 중국은 매년 200톤 이상 금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7월 "2009년 이후 금 보유고를 57% 늘렸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같은 발표를 믿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 금시장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을 자극하지 않으려 일부러 축소발표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키르기스스탄과 러시아,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이면서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신실크로드) 프로젝트 참가국이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전역의 육로와 해상에 고속철도와 신항을 건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구상이다.

달러 이후 세계를 내다보다 = 러시아와 중국, 기타 유라시아 국가들의 금 확보전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영국 상원 귀족이자 저명 경제학자, 통화금융연구포럼 대표인 메그나드 데사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과 금의 가치를 연동한 새로운 통화가 달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했다.

지난해 4월 13일 블룸버그통신은 데사이의 말을 인용 "가치를 보장받지 못하는 종잇돈의 경제학이 실패하면서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불가피하다"며 "SDR의 가치를 금에 연동시켜 국제통화로 사용하는 때가 곧 올 것"이라고 전했다.

SDR은 IMF가맹국이 규약에 정해진 일정조건에 따라 IMF로부터 국제유동성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지난해말 중국 위안화가 SDR 구성통화로 편입되면서 달러와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와 함께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현재 SDR 통화별 가중치는 달러 41.73%, 유로화 30.93%, 위안화 10.92%, 엔화 8.33%와 파운드화 8.09%다.

데사이는 블룸버그에 "만약 중국이 금 보유를 늘려나간다면 이같은 시대(SDR의 달러 대체)는 더 빨리 올 것"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중국과 러시아 등의 금 확보전은 달러 이후 시대를 노린 전략적 포석인 셈이다.

한편 중국 인민은행은 SDR의 자국 내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달 1일 중국 매체 신문망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G20 고위급 콘퍼런스'에 참석한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은 "중국이 가까운 시일 내 외환보유액을 달러와 SDR로 발표할 것이며 SDR로 표시 및 계산되는 채권을 중국 내에서 발행하는 방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저우 은행장은 "SDR 설치는 국제 통화 체계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SDR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이고 중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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