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의 거짓말

2016-06-30 10:47:24 게재
"의장님, 5초만 허락하신다면 제 아버지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아버지가 물대포 맞는 사진을 든다)

지난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2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씨가 구두발언 후 아버지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사진을 들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웹캐스트를 통해 방영됐다. 유엔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특벌보고관의 한국조사보고서 발표 후 일어난 일이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200일이 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민주화씨의 제네바 방문은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조사보고서 발표와 관련한 현지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집회에 대한 권리는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권리

올 1월에 10일간 한국을 공식 방문한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관련 정부 부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시민사회단체, 세월호 유가족, 발레오 노조, 백남기 농민 가족 등 한국의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났으며 그 결과물로 한국보고서를 발표했다.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집회에 대한 권리는 정부의 허가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기본권이며 한국 정부가 이러한 권리의 행사를 억누르는 것은 한국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발표 이후 이어진 정부 답변에서 대표부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건은 검찰이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 사건이 발생한 지 7개월 동안 이뤄진 검찰의 조사는 백남기 농민의 큰 딸을 불러 고발인 조사를 한 차례 한 것이 전부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2016년 현재,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은 한국이 맡고 있다.

후퇴하고 있는 한국의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려를 표명해왔다. 세월호 1주기 집회와 관련하여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구속되었을 때 시비쿠스, 국제인권연맹 등을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은 집회 주최자가 다른 참가자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다.

작년 11월,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도 한국 심의에 따른 최종권고에서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요 권고사항으로 꼽았다. 12월에는 한국의 집회시위의 자유 실태 조사를 위해 아시아 지역 법률가 및 활동가로 구성된 국제인권감시단이 방한해 현장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합법적인 시위는 보장하고 있다'는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집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국내법에 의해 주어지는 특권의 문제가 아니다.

집회에 대한 권리는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권리이며 모든 집회는 평화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입장이다. 불법집회이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물포를 쏘고 차벽을 쳤다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민주사회에서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 아닌 골칫거리로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 사회를 향한 한국 정부의 거짓말

"사과도 없었고 수사도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정의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와 가족들은 진실한 사과와 철저한 수사.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백민주화씨 발언 중 일부다.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으로 국제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 발언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집회의 자유를 잘 보장하고 있다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있다는, 국제 사회를 향한 한국 정부의 거짓말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백가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