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기기 간납업체 제도적 정비를

2016-07-13 10:45:48 게재
최근 정부는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 산업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등 바이오헬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전략인데, 산업의 성패는 혁신 친화적 산업 생태계의 구축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과 기술의 사업화 지원,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같은 시장진입 측면의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와 유통 질서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 또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의료시장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구매대행업체 혹은 간납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 2000년 초반 대형병원을 상대로 구매대행을 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간납업체와 구매대행업체는 최근 몇년 사이 빠르게 증가해 현재 약 80여개의 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구매대행업체 본연의 역할 수행 매우 미흡해

구매대행업체는 병원과 공급업체 사이에서 대량의 공동구매를 통해 병원의 구매비용을 절감하거나 물류 대행을 통한 행정비용을 줄여주는 대신, 공급업체에게는 시장 확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그 명분으로 한다. 국내에는 이지메디컴이나 케어캠프와 같은 대형 전문 간납업체가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구매대행업체 본연의 역할 수행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한편, '간납업체'라는 용어는 간접납품업체의 줄임말로, 구매대행업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특정 병원과 특수관계에 놓여 있는 유령회사이거나, 1~2차 의료기관과 대형 도매업체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중소 간납업체가 대부분이다.

국내 구매대행업체와 간납업체를 둘러싼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관행이 도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구매대행업체는 주로 대형병원의 구매에 개입하여 업체로부터는 수수료나 정보이용료, 물류비 등을 받고, 여기서 생긴 이윤을 병원에 각종 이용료 명목으로 지불한다. 수수료는 일방적이며 간납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병원에 납품할 수 없다. 대부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거래 관행을 일삼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둘째는 의료시스템에 기여하는 가치 측면에서 볼 때 존립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특히 병원재단이 직영하는 간납업체는 병원과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독점계약권을 획득, 공급사들에게 높은 할인율을 요구하고, 보험상한가로 병원에 계산서를 발행해 통행세 형식의 수익을 남기고 있다. 대금결제 보증 회피, 세금계산서 발급 지연, 납품 기회 차단 등 유통질서만 어지럽히고 의료소비자와 공급업체에 편익을 제공하지 않는다.

의료시장 공정거래 가이드라인 만들자

하지만 구매대행업과 간납업체를 폐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구매대행업은 확대 추세에 있고,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의료시스템의 비용절감, 거래의 투명성 확보, 거래업무의 표준화와 생산성 증대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구매대행업체와 간납업체들이 보건의료 가치사슬 상에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공정한 거래 관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적절한 해결방안이다.

현재 의료기기 판매 유통 질서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의약품에 비해 상당히 미흡하다. 따라서 특수관계인 금지, 독점적 영업행위 금지, 담합 조장과 거래 제한 행위 금지, 거래대금 지급기한, 거래 연체이자 지급, 적정 수수료율 책정 등 약사법 제47조 및 약사법시행규칙 제44조에 준하는 의료기기법령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약품 도매상 기업진단 요령 고시, 제약분야 거래 공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의약품 공급 및 판매모범계약서 등을 의료기기 분야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배성윤 인제대 교수 글로벌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