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재갈물리기' 소송에 법원이 제동

2016-08-22 10:45:30 게재

정부, 촛불집회 주도단체 상대 민사소송 2심도 패소

서울고법 "주최자 책임 물으려면 엄격한 증명 필요"

시민단체의 집회 개최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 시도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19일, 정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에 이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참가자의 폭력행위 책임을 집회 주최측에 묻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 지난 2008년 5월 27일 오후 7시 서울시청 광장옆 태평로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사 주관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정부의 장관고시 관보게재에 항의, 이틀째 '재협상' 촉구와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청, 촛불집회주최자에 5억 손배소송 = 경찰청은 2008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시청광장 등에서 개최된 촛불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시위자들의 경찰에 대한 폭행, 경찰차량의 파손 등으로 발생한 재산적 손해에 대해, 2008년 7월 집회주최자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실무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민사소송에서 행정기관은 당사자 능력이 없어 대한민국이 원고가 돼 청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찰청이 청구한 것이다. 경찰청은 부상전경 치료비 등으로 2억4천여만원과 경찰차량 수리비 등으로 2억7천여만원 등 총 5억1천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한민국(경찰청)은 '집회주최자들이 일부 집회 참가자의 폭력행위를 선동하거나 유발했고, 폭력시위자와 공모해 폭력행위를 했거나, 집회·시위 주최자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해 폭력행위를 용인 또는 방조했다'며 '집회 주최측에 폭력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참가자의 폭력행위에 대해 주최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서울고법 "자기책임원칙에반해" = 서울고법 민사1부는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의 돌발적인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집회·시위 주최자에게 이로 인한 모든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집회·시위 주최자와 일부 참가자의 폭력행위와의 관련성, 집회·시위 주최자가 피해 발생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별 폭력행위에 관한 구체적인 증명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경찰청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보다 구체적으로 "집회 주최자의 행위가 방조에 해당하는지, 주최자가 질서유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주최자의 행위와 폭력행위, 또는 경찰청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①폭력시위자가 누구인지 ②폭력시위지가 주최단체의 구성원이거나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었는지 ③폭력시위자가 주최자에게 요구되는 질서유지의무의 범위 내 또는 시간적·장소적 통제범위 내에 있었는지 ④주최자의 행위가 폭력시위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구체적 증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경찰청의 제출 증거만으로는 이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 "경찰 과도한 통행제한" =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10월 "경찰관이 집회·시위 현장에 대해 과도한 통행제한을 했고, 인권침해적인 과잉진압을 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도 2011년 6월 "경찰관이 경찰버스로 차벽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통행을 제지하는 행위는 개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질서유지의무와 관련해서도 "집시법이 요구하는 질서유지의무는 순조로운 집회·시위의 진행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준비나 조치를 해야한다는 정도"라며 "폭력시위자를 적극 제지하고 억압해 완전무결한 집회·시위가 이뤄지도록 하는 정도의 질서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일부 주최자들이 일반교통방해죄와 집시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기소됐지만, 그렇다고 하여 곧바로 경찰청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평화시위 보호책임 경찰에 있어 =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가 폭력·불법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실상 예견할 수 있더라도, 집회·시위 자체가 집단적인 폭력·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는 보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회주최자를 변호한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이번 경찰의 소송제기는 다분히 집회주최자에게 책임을 물어 정부 정책 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집회를 주최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일부 시위자의 일탈에 대해 주최측에 책임을 묻기 위해선 인과관계에 대한 구체적 입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또 김 변호사는 "집회주최자가 아무리 질서유지인을 많이 둔다고 하더라도 민간인에 불과한 질서유지인이 통제에 따르지 않는 일탈행위자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일탈행위자를 평화적인 집회·시위와 분리해 집회·시위의 평화적 진행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지적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