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시미즈 야스유키 일본 자살예방활동가

"자살은 우울증, 개인탓? 사회 문제로 봐야"

2016-09-07 10:32:25 게재

513명 자살자 유가족 조사, '자살위기경로' 알아내

실업·따돌림 등 사회적 문제 겹칠 때 자살 내몰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부끄러운 타이틀 중의 하나다. 위안(?)할 일은 아니지만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자살률이 높은 국가 중 한 곳이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건강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8.7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강연한 라이프링크 시미즈 야스유키 대표. 사진 라이프링크 제공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일본의 자살률은 2003년 고점을 친 후 최근 10년 사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8년 이후 연간 자살자가 14년 연속 3만명을 넘어섰던 일본은 2015년 2만4000명대로 낮추는 성과를 봤다. 고점 대비 연간 자살자 수가 30%나 줄어든 수치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 자살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자살예방활동가 시미즈 야스유키 라이프링크 대표를 만나 들어 봤다. 그는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 10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시미즈 대표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대책으로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자살문제의 '사회화'였다. 자살을 우울증 등 개인적인 마음의 병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실업·경제난·따돌림·폭력 등 여러 사회적인 문제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본도 10년 전만 해도 자살을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병 탓에 자살을 하는 것이니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도록 해줘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렀죠.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우울증 증세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울증까지 오게 된 경로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쌓여 풀지 못한 탓에 우울증이 오고 그 다음에 자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살을 막으려면 우울증 이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시미즈 대표는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유가족을 일일이 만나 자살실태를 조사했다. 이렇게 5년여간 513명의 자살자들의 삶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자살에 내몰리는 평균적인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살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로를 걷게 되는데 실업자의 경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돈을 빌리죠. 나중에는 가족들도 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사채를 쓰게 되고 다중채무를 안게 됩니다. 그러다 추심이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려 결국 자살하게 되는 식입니다.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승진이나 부서이동 등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자살을 하게 되는 경로가 일반적이고, 주부들은 가정폭력이나 육아 고민, 부부간 불화 등으로 인해 우울증을 거쳐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따돌림이나 부모와의 불화 때문에 자살에 내몰리고요."

시미즈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 풀 수 없다 하더라도 풀리지 않은 채 계속 쌓이지 않도록 고리를 끊는 역할을 사회가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도대체 어떤 문제가 쌓여가고 있는가를 알아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태 조사다. 시미즈 대표는 물론 민간단체, 언론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자살대책기본법을 마련한 일본은 2010년 이후 지역 내 자살실태에 대한 세밀한 통계를 내 이를 공개하고 있다. 이 통계를 보면 지역 내 자살 고위험군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토는 자살한 사람 중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19%에 달하는데 이는 2~3%에 불과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이 높다든지, 요코하마는 다른 직업보다 주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등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다. 이렇게 지역 내 자살자의 특징이 파악되면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그에 맞는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시미즈 대표는 "고령자 자살이 많은 지역에서 청년층에 맞는 대책을 세우면 효과가 없듯이 지역별로 자살자의 특성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자살문제의 사회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짚었다.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자살실태가 어떤지, 어떻게 자살에 내몰리게 되는지 자세한 데이터를 보여주면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구체적인 자살실태조사를 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처할 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것만이 자살을 줄일 첫 걸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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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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