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다이어트와 디레버리징(Deleveraging)

2017-01-16 11:02:41 게재
새해가 밝았다. 매일 똑같이 뜨고 지는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 바라보는 태양은 그 의미가 사뭇 각별하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해의 소망이 담긴 마음으로 태양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한 해를 알차게 보낼 다짐을 하느라 분주할 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결심들은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난다. 아무리 굳건히 다짐을 했어도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얼마 안가 '이번 한번만'이 시작되고 '다음에'로 넘어가기 일쑤다. 실제 직장인들이 새해결심을 포기하기 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3.3일'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그저 빈말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연초 목표 단골리스트 중 하나가 '다이어트(Diet)'다. 남녀노소 이유야 제 각각이어도 하나같이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산다. 외모에 민감한 청춘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층도 옷맵시나 건강상의 필요에 의해서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경우는 손에 꼽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융생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다름아닌 '가계부채 다이어트'즉,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지난해 사상처음으로 1300조원을 돌파했다. "빚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는 하도 자주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정도지만 막상 부채를 줄이기란 힘들다.

'2015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가계부채는 2012년 5291만원에서 2015년 6181만원으로 16.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증가율(8.7%)을 2배가량 웃돈다. 더욱이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가처분소득 증가속도 보다 훨씬 빨라 앞으로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3월말 현재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 10곳 가운데 1곳이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다. '한계가구'란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많고 가처분소득에서 대출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DSR)이 40%를 넘는 가구를 말한다. DSR이 40%를 넘고 실물자산을 포함한 전체자산에서 부채가 더 많은 '부실위험가구'또한 111만4000가구(10.4%)에 이른다. 더욱이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계부채 걱정이 커지고 있다. 금리상승은 곧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도 다이어트하자

살찐 사람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처럼 과다부채의 가계도 디레버리징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사실 '비만'과 '빚'은 증상이나 처방에서 아주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만병의 근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비만이 육체의 병이 되듯, 빚은 마음의 병을 키운다. 돈을 빌리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어쩔 수없이 빚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또 빚은 일단 시작되면 빠져 나오기 힘들 다는 점에서도 비만과 통한다.

다음은 처방이다. 빚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살을 빼는 다이어트 과정과 비슷하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직접 저울에 올라가 눈금을 확인하는 것이다. 디레버리징의 출발점도 부채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빚에 쪼들려 살면서도 지금 갚아야 할 빚이 얼마나 있는지, 매달 이자로 나가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동이체로 이자가 빠져나가다 보니 빚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진 탓이다. 하지만 빚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부채탈출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문제점을 알아야 처방도 나오는 법이다. 자신의 소득수준에 비추어 부채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마치 비만도를 알아보기 위해 '체질량 지수'를 따져보는 것과 비슷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산대비 부채 비중'이다. 보통 부채가 자산의 30%를 넘어서면 관리가 필요한 위험수준이다. 가령 총 자산이 1억인데 총 부채가 3천만원 이상이면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대금·주택담보대출금 등 매달 나가는 부채의 원리금 합계가 월수입의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빚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라

다음은 소비습관과 씀씀이를 돌아보는 것이다. 흔히 다이어트를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 운동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과식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살이 빠지기 힘들다. 군살을 빼려면 덜 먹고 더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야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이어트에 적당한 운동과 식사량 조절이 필요한 것처럼 디레버리징의 길도 오직 덜 쓰고 많이 저축하는 방법뿐이다.

디레버리징의 3단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짜는 일이다. 성급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쉽다. 마찬가지로 빚 다이어트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너무 빨리 빚을 갚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급전이 필요할 때 또 다시 대출을 받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이런 낭패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현금흐름을 꼼꼼히 따져서 부채상환 시기와 금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새해에는 다른 무엇보다 빚으로 꾸려가는 살림살이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라는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가정경제의 건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