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의 소액주주 축출' 견제장치가 없다

2017-03-02 11:15:24 게재

'소액주주 이의제기' 패소, 삼성자산운용 지분 강제매도 … 매도요건 사실상 무용지물

'대주주의 소액주주 축출제도'에서 법원이 대주주의 권한을 광범위하게 인정함에 따라 소액주주권의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주주 견제장치가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보루인 법원마저 소극적인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삼성자산운용 소액주주들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강제로 매도당한 삼성자산운용의 주식매매가격이 잘못 산정됐다"며 제기한 주식매매가격결정 재항고심에서 원고패소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2012년 시행된 '대주주의 소액주주 축출제도'에 대한 최고법원의 첫 판단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본안심리 없이 기각)으로 처리했다.

'대주주의 소액주주 축출제도'는 정확하게는 '지배주주에 의한 소수주식 전부취득 제도'(상법 360조의 24)를 말한다. 회사 지분의 95%를 보유한 지배주주가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소수주주에게 주식의 매도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수주주는 법률상 용어이고 일반적으로는 소액주주를 말한다.

◆삼성그룹, 삼성생명에 지분 몰아주기 = 삼성자산운용 사건은 2014년 5월 삼성생명이 이사회를 통해 삼성자산운용 지분 전체를 사들이겠다는 취지의 의결을 하고 삼성증권 등 삼성그룹 계열에서 지분을 넘겨받은 후 소액주주들을 축출한 일이다. 삼성생명이 지분을 인수하기 전까지 삼성자산운용의 최대주주는 65.28%를 보유한 삼성증권이고 2대주주는 7.7%를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삼성생명은 5.48%를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생명의 삼성자산운용 인수는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삼성생명은 2014년 7월 삼성자산운용 지분 96.27%를 보유해 지배주주가 됐는데 그 과정을 보면 삼성그룹 전체가 나서서 지분을 몰아준 것이다. 삼성생명은 곧바로 삼성자산운용 이사회를 열어 '지배주주의 소액주주에 대한 매도청구권 승인'을 안건으로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했다. 임시주총에서 일부 소액주주들이 반대했지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삼성생명은 1주당 2만2369원에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강제취득했다.

삼성자산운용 소액주주인 김 모씨 등 50명은 삼성자산운용을 상대로 주주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손쉽게 내팽개쳐진 소액주주 권리 = 대주주가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강제로 취득하려면 법적으로 '경영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소액주주의 주주권 남용에 의해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이 곤란하고, 강제매수가 소액주주에게 불공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요건을 구비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제시한 사유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주주총회 소집비용·명의개서 대리인 비용 등 관리비용 절감, 시너지 창출 등 지엽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법원은 삼성자산운용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경영상 목적과 관련해 금융투자업무의 특성상 빠른 세계 시장경제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주주총회 개최비용 (연 1600여만원의 금전적 비용) 등의 절감이 매도청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회사이익의 실질적인 증대라고 판단했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지배주주에 의한 매도청구권행사의 내용상·절차상 요건인 '경영상의 목적'과 '주주총회 결의'가 소액주주의 권리보호에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게 사실상 드러난 것"이라며 "국내 1위 자산운용사가 1년에 16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소액주주 축출을 위한 정당한 경영상의 목적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어떤 경우가 부정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매매가격 산정'도 논란 = 소액주주들은 1심 판결이 나온 뒤 항소하지 않고 삼성생명이 제시한 매매가격 산정이 부당하다는 신청을 법원에 냈다. 삼성생명이 제시한 매매가격은 주당 2만2369원이다. 삼정회계법인이 계산한 것으로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계열사 등으로부터 사들인 가격이다. 하지만 장외 시장에서 주당 3만원을 호가한 적이 있어 소액주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소액주주들은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를 토대로 자산운용시장이 연평균 7~8% 중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자산운용산업은 2020년 GDP 대비 70%를 넘어서는 수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소액주주들이 입은 불이익과 지배주주가 얻을 이익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또한 금융업종에 대한 평가시 주로 활용되는 배당할인모형에 따라 삼성자산운용의 가치를 주당 3만4747원에서 3만7570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매매가액 산정에 있어 소액주주의 불이익과 지배주주의 이익은 고려할 여지가 없다며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배당할인모형 평가의 적절성은 인정했지만 소액주주의 평가액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적극적으로 평가액 산정에 나서지 않았다. 2심 판단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제대로 된 심리 없이 사건을 끝냈다.

김 변호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역시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도외시한 채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지배구조개편을 시도했는데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의 소유구조에서 소액주주들을 축출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한 형태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판결로 대주주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소액주주들을 축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대법원이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심리불속행으로 끝낸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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