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경제 | 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

대우차 부도·대북송금 폭로의 뒷얘기들

2017-03-17 10:44:18 게재
엄낙용 지음 / 나남 / 3만5000원

공직자의 지난 이야기에는 우리나라 역사가 들어있다.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현장에서 담아낸 기억들은 그 자체로 귀하다.

엄낙용 강릉원주대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의 굵은 마디마디를 겪어냈다. 공공차관, 통상마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금융실명제, OECD 가입, IMF 관리체제까지 숨가쁜 나날이었을 법하다.

'한 공직자의 경제 이야기'는 대학 교재다. 전공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1부는 '공직자의 길', 2부는 '시장 기업 정부 그리고 한국경제'를 다뤘다. 엄 교수는 박정희정부였던 1970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관세청, 재무부, 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의 관세, 금융, 국고, 경제협력 국제투자, 외환, 조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고 관세청장, 재정경부 차관, 산업은행 총재로 일했다.

산업은행 총재시절의 대우자동차의 부도를 결정하고 대북송금을 폭로한 뒷얘기를 담아냈다. 대우자동차는 1차 매각 실패후 원매자를 찾지 못해 '돈먹는 하마' '돈으로 숨만 쉬게 하는 시한부 기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강성 노조 등으로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그는 "지금의 경영진에게 자력으로 구조조정을 감행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면서 "결국 혼자의 책임으로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혼자 책임'은 채권단이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대우자동차의 어음을 계속 결제해 주는 상황과 노조의 동의서를 첨부한 구조조정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부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알리는 것이었다. 결국 노사 협상은 결렬되고 대우자동차는 부도처리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채권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두둔해 줬다.

대북송금 의혹은 현대그룹의 자금흐름에서 잡았다고 했다. 비정상적 여신이 현대상선에 제공돼 왔던 것을 확인하고는 현대그룹의 자금흐름을 살펴보니 "매우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 언론사 편집국장에게 제보했더니 "언론기관과 정부와의 갈등으로 언론기관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 그러한 문제를 다루기에 매우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문중의 엄호성 의원을 통해 국정감사장에서 털어놓게 됐다. 이 문제로 곤혹을 겪은 이기호 수석과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에 대한 애정 어린 변명과 함께 그는 "인간적 어려움으로 이를 외면하고 침묵한다면 평생을 두고 자신을 가책하면서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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