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노믹스' 성공조건 | ② 경제 위험요인부터 없애자

가계부채·기업부실 안고 경제성장 어렵다

2017-05-11 10:49:34 게재

은행권 수익성 좋은 올해가 가계채무조정 적기 … '해고 없는 구조조정'으로 포용적 성장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단 경제현안 점검회의에서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거대한 산업재편과 일자리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래산업을 선점하고 새로운 좋은 일자리로 창출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혁신적 지원을 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치 △신생기업에 대한 자금 및 판로 지원확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사업 및 기반기술 지원 육성 △미래형 친환경·스마트카 육성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산업 육성 △종소기업 및 소상공인 정책과 벤처·창업지원 전담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공약들도 내놓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선 우선 위험요인부터 제거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조선·해운을 비롯해 철강·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부실을 떠안은 채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급증한 가계부채가 소비 발목 =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344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90%가 넘는 수준이다.

2002년 464조원 규모였던 가계부채는 매년 빠르게 증가해 2005년 500조원, 2008년 700조원, 2011년 900조원, 2013년에는 1000조원을 돌파했다. 2015년과 지난해에는 두자리 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1200조원과 1300조원을 연달아 뛰어넘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0~2015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21.4%나 증가했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0.5% 감소했다. 미국은 22.6%, 영국은 11.8%, 독일은 7,4%나 줄었다. 경기 침체와 함께 부채와 자산 구조조정이 이뤄졌던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부채를 늘려 부동산 경기 띄우기에 나섰던 결과다.

문제는 급증한 가계부채가 경제회복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경기가 최근 호조를 보이는 것은 가계부채 등 내수의 발목을 잡던 요인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조정됐기 때문"이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5~6년째 경기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가계부채는 더 증가해 경기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가계부채가 소비를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해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근거로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제약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70%에 달했고, 이 가운데 75%는 실제 소비지출과 저축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52.6%)의 가구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외부충격에 약한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과도한 가계부채는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리인상 등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면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가 부실해지고 담보로 잡힌 부동산 등 매물이 쏟아지면서 자산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나라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구조조정 새 모델 제시해야 = 부실업종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급하다. 당장 2조9000억원의 신규자금 지원 등 채무재조정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대우조선해양을 정상화해야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2020년까지 유동성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업황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조선산업 재편이 차질을 빚을 경우 또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늦은데다 사전사후 준비 없이 추진된 구조조정으로 쪼그라든 해운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밖에 수요위축과 중국의 추격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철강과 석유화학 등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은 우리경제를 이끌어온 주력 산업들이다. 이들 업종의 부실을 방치한 채 경제가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히 미국 등 세계경제 회복으로 수출이 증가하면서 생산과 투자가 늘고 소비심리가 개선되는 등 경기여건이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1분기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4조3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0%가까이 늘었다. 그만큼 부실 정리의 여력이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정책 추진이 뒷받침 받을 수 있다. 가계와 기업 부실을 정리하기에는 올해가 적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가계부채 해법으로 △가계부채 총량 관리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구축 △고금리 이자부담 완화 △소액 장기연체 채무에 대한 과감한 정리 △'죽은 채권' 관리 강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전담기구 설치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확대 등을 제시했다.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공약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기간 "박근혜정부의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조선업은 여전히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고 고용측면에서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당면한 구조조정을 어떻게 추진해나갈지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았다. 친환경 선박 등 신규발주를 지원하고, 메가 컨테이너·대형벌크·중견인트라아시아 선사를 육성하겠다는 정도의 공약만 내놓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와 기업 부실 구조조정은 문 대통령이 주장해온 소득주도 성장론과 포용적 성장론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회생이 불가능한 저소득·저신용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경제활동에 복귀하도록 하고, 해고만이 능사가 아닌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정권초기 구조조정을 미루면 우리경제는 더 힘들어진다"며 "문재인정부 첫해 가계와 기업 부실 정리를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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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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