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문숙 스리랑카 유아교육 봉사단원

"스리랑카에 창의교육 전파합니다"

2017-05-15 11:07:45 게재

"2010년 8월경인가 남편의 회갑기념으로 자식들이 성지순례 여행을 보내줬어요. 그때 이집트로 가는 코이카 봉사단원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 사람들처럼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곤 남편이 은퇴한 뒤 같이 봉사하면서 살자고 결심했어요. 107기 코이카 시니어 봉사단원 모집공고에 남편은 사서분야에 신청하고 저는 유아교육 분야에 신청했는데 저만 합격하고 남편은 수요가 없어 떨어졌어요. 하지만 남편도 함께 스리랑카에 와서 저를 돕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봉사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지난해 2월부터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107기 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에서 봉사활동 중인 이문숙(62) 단원(오른쪽 사진 가운데) 의 얘기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막연히 꿈만 꾸던 봉사의 삶이 현실이 된 만족감은 이런 어려움도 잊게 만들었다.

이씨는 현재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남부 해안도시 마타라(Matara)에서 4곳의 유치원을 순회하며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교사들에게 교수법도 전수하고 있다. 가끔 지역 초등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도 진행한다. 최근에는 이 지역 초등학교 저학년 100명에게 색종이로 연꽃과 한복을 만드는 교육도 진행했다.

이씨는 "마타라 지역에선 준비물을 마련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실습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코이카가 제공한 단원활동 물품비로 주름지, 일회용종이컵, 색종이 등을 준비해 이런 창의력 향상교육이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국내에 있을 때부터 유아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사서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육아문제로 일을 그만 둔 뒤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운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일을 배웠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등에서 20년간 경험을 쌓았고 유아교육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고, 저처럼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어머니들을 돕고 싶었던 것이 유아교육 분야를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국땅에서의 유아교육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배 하에 있어서 영어를 공영어로 사용하지만 유아들은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현지어(싱할라어)를 쓰기 때문이다. 밤새 교육안을 짜고 싱할라어로 만들어 가도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몸짓 발짓도 섞어가며 정성을 기울였고 아이들과 친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장난을 치고 말을 걸 정도다. 학교에서는 수줍어하고 말도 잘 하지 않던 아이들도 길에서 만나거나 슈퍼마켓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와서 인사도 하고 아는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가르친 스리랑카 아이들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개발도상국인 스리랑카는 아직 경제나 사회인프라 측면에서 부족한 것이 많다. 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창의적인 어른으로 자라고 스리랑카를 이끌어가는 일꾼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 스리랑카에 온 이씨는 2년의 봉사기간이 끝나는 내년 2월이면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곳에 온지 1년 정도 지나니까 비로소 현지 사정에 맞는 유아교육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벌써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남은 기간 더욱 열심히 현지 교사들에게 이씨의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봉사단원의 생활환경에 대해서는 넉넉하진 않지만 어려움은 없다고 털어놨다.

마타라에 있는 집은 두 부부가 살기에 충분하며, 월 5만 루피에 해당하는 주거비 전액은 코이카가 부담한다. 또 시니어 단원 생활비로 월 1000달러(약 113만원) 지급되는데 부부가 살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봉사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 그리고 착실한 준비를 한다면 기회는 누구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씨는 귀국후에도 다문화가족 유아들을 돌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렵겠지만 그 아이들이 스리랑카와 관련있는 아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귀국 후에는 남편도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할 계획이다. 이씨 부부의 삶에 봉사는 이제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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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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