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투자자 권리보호│② 증권집단소송

도입한 지 12년, 피해구제는 겨우 2건

2017-05-30 10:23:57 게재

소송제기 9건, 배상까지 최소 7~8년 걸려 … 제도 개선없이 집단소송 확대 '무의미'

2013년 동양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이 동양그룹과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허가여부에 대한 판단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2014년 6월 2건의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3년 가까이 지났지만 1심 결정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승소해도 항고심과 대법원이 남아있고 소송허가결정을 받아야 본격적으로 손해배상을 다툴 수 있다. 집단소송은 소송허가신청 절차까지 포함할 경우 사실상 6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30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증권분야에 한해서만 허용된 집단소송제도는 2005년 도입됐지만 12년간 소제기 건수는 9건에 불과하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라 손해 입증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소송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단소송제를 다른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행 증권집단소송제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피해자 구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동양 피해자, 소송허가도 못 받을 판 = 동양그룹 회사채 투자 피해자들은 두 갈래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동양그룹 계열인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 비상장법인까지 포함한 계열 전체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과 상장법인이 발행한 회사채에 국한해서 벌이는 집단소송으로 나눠져 있다.

동양그룹 전체를 상대로 한 소송은 투자자들이 제기한 문서제출명령신청을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기각하면서 손해배상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퉈보기도 전에 소송허가 결정조차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투자자들은 회사채 등을 판매한 유안타증권 등을 상대로 회사채 매입자를 확인해 피해자 명단과 피해규모를 확정하려고 문서제출명령을 법원에 신청했다. 하지만 1·2심은 "비상장법인은 증권집단소송의 대상이 안된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기각했다. 제대로 된 심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투자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 중인 이대순 변호사는 "동양계열사의 회사채와 CP발행은 동양그룹 차원에서 이뤄졌고 당시 검찰 수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사기성 발행이었다"며 "동양증권을 통해 금융상품이 팔렸는데 계열사가 비상장법인이라고 증권집단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은 집단소송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허가신청 사건을 문서제출명령과 같은 취지로 해석할 경우 기각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월 당시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권집단소송법의 적용범위를 주권상장법인으로 한정할 경우, 소위 '동양사태'와 같이 형식적으로 비상장법인을 내세워 기업 어음 또는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대규모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는 법 적용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비상장법인을 집단소송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률개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법안은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동양그룹 등을 상대로 한 또 다른 집단소송은 지난해 6월 심문기일을 연 뒤 별다른 진행 상황이 없다.

9건 중 4건 소송허가 '대기 중' =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고 12년 동안 9건이 제기됐는데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건이 소송허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동양사태 투자자 소송뿐만이 아니다. 진매트릭스 대표의 시세조종(주가조작)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투자자들이 2013년 11월 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허가 여부에 대한 1심 판단조차 나오지 않았다. 법원은 투자자들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증권사들을 상대로 제출명령 독촉을 하고 있지만 자료제출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투자자들의 증거 확보를 위해 법원이 강력한 문서제출명령권을 행사하고 있다.

구현주 변호사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남소가 많아질 것이라는 재계 등의 우려와 달리 제도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제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송허가 3심 구조 바꿔야" = 구 변호사는 "소송허가 결정이 나온 뒤 본안소송을 3심까지 진행하려면 최소 7~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분식회계에 따른 주가 폭락으로 집단소송을 당한 GS건설은 3년만에 대법원이 소송허가를 최종 결정함에 따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송허가를 단심제로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송허가 결정에 대한 불복권한을 투자자한테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당초 만든 증권집단소송법 초안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겼지만 이후 법개정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항고할 수 있게 되면서 6심 구조가 만들어졌다.

2013년 법무부 용역보고서 '증권관련집단소송제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는 소송허가 사건에서 이의절차를 두는 것이 소송 지연전략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피고 측이 이의절차를 소송 지연전략으로 쓴다고 해도 절차진행을 빨리하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 경우도 결국 지연전략으로 이용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이치뱅크, 3번째 배상 가능성 높아 =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2건의 소송에서 투자자들은 배상을 받았다. 첫 번째 배상은 2009년 진성티이씨 주주들이 키코 관련 손실은폐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 이듬해 화해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배상액은 투자자들이 주장한 피해액의 25% 정도에 그쳤다.

'한화스마트 10 ELS' 투자자들이 '로얄뱅크 오브 캐나다'를 상대로 제기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소송허가결정이 나온 뒤 화해조정이 성립됐다. 진성티이씨와 달리 피해액의 약 110% 수준으로 배상이 이뤄졌다. 현재 배상액 분배절차가 진행 중이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내달 27일까지 분배관리인인 법무법인 한누리에 권리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배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집단소송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셈이다.

ELS종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도이치뱅크는 집단소송의 세 번째 배상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도이치뱅크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소송을 별도로 제기해 이미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집단소송은 소송허가결정이 나온 후 1심에서 투자자가 승소했다. 도이치뱅크는 항소했지만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심 판결대로 하면 도이치뱅크는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에 지연손해금을 더해 피해액의 130~140%를 배상해야 한다.

투자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구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적은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일괄적으로 배상을 받고 피해를 본지도 모르고 있다가 구제를 받게 되는 것을 보면 집단소송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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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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