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시장의 과거와 현재는 10여년 뒤 석유시장의 미래"

2017-06-12 11:11:15 게재

역사상 처음 논쟁의 약자로 선 거대 석유기업

▶"'석유=권력'이었던 20세기 패러다임, 전기차로 무너진다" 에서 이어짐

 오늘날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돈과 권력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집적체다. 기술 진보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기술로 인한 혁신적 파괴는 눈 깜짝할 새 이뤄진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줬다. 과학자이자 발명가, 기업인인 세스 밀러는 자신의 경험담을 다음처럼 적었다.


"1999년 사진 관계용품 제조판매에서 전통의 강자인 코닥사에서 취업 면접을 봤다. 98년 말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한다며 아버지가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로 사주셨다. 30만화소의 화질이었고, 사각형의 플로피디스크에 사진을 저장하는 구조였다. 전통 필름카메라는 일반적으로 대략 600만화소를 뽐냈다. 당시 내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하면 현실이라기보다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느겨질 정도로 성능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수준이 빠르게 높아졌다. 더 이상 필름을 사러, 사진을 인화하러 사진관에 갈 필요가 없었다. 취업 면접 때 코닥 인사담당 임원에게 물었다. '디지털 기술의 급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임원은 "걱정하지 않는다"며 "필름 카메라 시장은 향후 수십년간 끄떡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는 순간 그 임원에 대해 '바보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는 유능한 임원이었다. 단지 코닥사의 기업문화에 매몰됐을 뿐이었다. 필름 카메라가 누리던 과거와 현재의 영광을 미래에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맹신한 것뿐이었다."

98년엔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때였다. 시장 조사치에도 반영되지 않을 정도였다(그래프 참조). 하지만 7년 뒤인 2005년 전세는 완전 역전됐다. 1997년 시가총액 300억달러를 기록했던 코닥은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골리앗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코닥의 부침 기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사례도 많다. 2007년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을 지배했던 골리앗이었다. 시가총액이 1500억달러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같은 해 애플사가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다윗의 돌팔매질이었다. 2012년 여름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5% 아래로 수직낙하했다. 시가총액은 60억달러로 줄었다. 정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데 5년이 채 안 걸렸다.

거대 석유기업들은 '우리는 다르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재 추산된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용비용 예상치는 1마일(약 1.61킬로미터)당 0.13달러다. 배터리 성능이 개선될수록 비용은 줄어든다. 반면 현재 1갤런(약 3.79리터)당 20마일의 연비(리터 기준 8.5킬로미터) 성능을 내는 내연엔진 자동차의 운용비용은 1마일당 0.1달러다. 여기에 보험과 수리, 주차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를 합하면 마일당 운용비용은 0.2달러를 넘는다.

자율주행 차량을 공동이용하는 게 내연엔진 차량을 자가보유 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점이 바로 석유산업이 극복하기 힘든 지점이다.

이같은 논리전개가 지나치게 거칠다고 느낀다면, 컨설팅기업 '리씽크엑스'(RethinkX)의 최근 보고서를 참조해보자. 이 보고서는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에너지혁명 2030' 저자, '창조적 파괴 기술' 전문가인 토니 세바가 작성한 것으로, 자율주행차의 미래 비용 분석서다.

보고서의 예측에 따르면 자율주행차가 시장에 출시되는 때는 2021년이다. 이때 자가보유 자율주행차의 운용비용은 마일당 0.16달러, 택시 승차 등으로 공동이용할 경우 0.05달러다. 이듬해인 2022년엔 석유수요가 정점에 달한다. 2023년 사람들이 기존 중고 내연엔진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중고차 가격이 폭락한다. 동시에 내연엔진 승용차를 신차로 구매하려는 수요는 사실상 제로로 떨어진다. 2030년엔 내연엔진 자동차는 사실상 거리에서 사라진다. 이때 전체 석유수요는 현재에 비해 30% 줄어든다.

이같은 상황을 만든 동력은 단순하다. 선택지가 여러개라면, 사람들은 보다 저렴한 옵션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품인 동시에 문화 자체라고 여기는 이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 저변을 떠받치는 건 경제다. 부부 등 가족 중심으로 경영하던 미국의 자영업 문화는 월마트 대공습 이후 순식간에 와해됐다. 중국 등 신흥국의 값싼 물건이 미국 시장을 잠식한 이후 그 누가 '바이 아메리카'(미국산을 애용하자) 캠페인을 벌여도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자율주행차는 값만 싼 게 아니다. 이용하기 더 편하다. 교통사고가 줄어들고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헤맬 필요가 없다. 각 주택에 딸린 차고는 앞으로 일광욕 침대가 놓이게 될 것이다.

리씽크엑스 연구진의 예측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는 2021년쯤 출시되고 10년이 안 돼 전 세계 국가에서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거대 석유기업에겐 악몽 그 자체다.


필름 카메라나 휴대폰의 사례가 와닿지 않는다면, 보다 생생한 예가 있다. 바로 또 다른 화석연료인 석탄이다. 석탄시장의 과거와 현재는 2020년쯤 석유시장이 겪을 미래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석탄시장을 보면 답이 나온다. 저렴한 천연가스가 시장에서 석탄을 밀어내면서 석탄소비가 정점에서 대략 25% 줄었다. 단 10년 내 벌어진 일이다. 이는 리씽크엑스 연구진이 2030년쯤 전 세계 석유 수요가 30% 줄어들 것이라 예측한 것과 비슷하다.

석탄시장을 강타한 충격은 컸다. 주요 기업은 그같은 충격을 예측하지도 못했다. 석탄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 매출 정점을 찍으면서 거액의 융자를 받아 설비확충에 나섰다. 하지만 석탄가격이 급락하면서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회사를 어떻게든 꾸려나가야 했지만, 채권자들의 독촉은 거세지기만 했다.

미국의 주요 석탄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지난 6년간 99.9% 사라졌다. 현재 석탄을 캐는 업체들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파산상태에 있다.

자율주행차가 시장에 풀리면, 석유도 석탄의 뒤를 이을 전망이다. 신규 유전 탐사활동은 멈출 것이다. 기존 광구로도 석유 수요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셰일석유 생산급증에 맞춰 융자를 통해 설비확충에 나서고 있는 정유업자들은 조만간 빚상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상당수 기업은 결국 파산에 직면하게 된다. 석유사업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송유시설 부문도 존폐 기로에 설 것이다.

세스 밀러는 "미국 송유시설기업들의 초우량고객인 캐나다 오일샌드(모래가 섞인 석유)가 고비용에 크게 못 미치는 수요로 생산을 멈출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석유는 여전히 광범하게 사용될 것이다. 도로를 건설하는 데 있어 여전히 석유는 없어선 안 될 자원이다. 그러나 현재의 석유 채굴과 자동차, 정유제품 관련 기업들은 수요가 감소하면서 과당경쟁 상황에 몰릴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선박 연료나 난방유, 아스팔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중유 이상의 석유제품 부문으로 서둘러 타깃을 바꿔야 한다. 트랜스캐나다와 같은 송유기업들은 오늘날의 석탄기업처럼 환경오염 처리비용을 댈 수조차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밀러는 "과거 석유와 관련된 논쟁은 환경과 국제정치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사업과 효율성'의 문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 석유기업의 그 논쟁의 약자로서 등장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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