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발부기준 명확하게 해야"

2017-06-22 00:00:01 게재

정유라 두번째 영장기각에 기준 논란 … 법원·검찰, 해묵은 갈등 지속

검찰이 정유라(21)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기각되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단법인 대한법학교수회(회장 백원기, 이하 대법회)는 21일 정씨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대법원은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서 보인 자기모순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대법회는 "지금까지 중범죄 혐의로 외국에서 강제송환된 범죄인 중 구속되지 않은 피의자는 없었다"며 "권순호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우병우, 이영선에 이어 3번째 기각 결정을 내려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안민석(52)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판사는 국민이 우스운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유라가 결국 자유의 몸이 됐다. 정유라의 진술을 믿고 증거인멸과 도피 우려가 없다고 믿는 판사의 판단을 존중하려야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우병우 구속영장 기각, 이영선 구속영장 기각, 정유라 구속영장 기각 그리고 고영태는 구속영장 발부. 참 재미있는 나라다" 등 납득할 수 없다는 말도 많았다.

지난 4월에도 특검에 이어 검찰이 재청구한 우병우(50· 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박영수(65·10기) 특별검사가 "우병우 영장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했던 장담도 틀렸다. 영장발부 여부는 30년 가까이 검사생활을 했던 법조인도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법원과 검찰, 인신구속 입장 '달라' = 영장기각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원인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다.

검찰은 자신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제시하는 이유들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완규(57·23기)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은 논문에서 "유사 사안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더 무겁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많다고 생각되는 사안에서는 영장이 기각되고, 그보다 가볍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영장이 발부돼도 왜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인신구속제도에 대한 이해와 입장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검찰은 대검찰청의 '구속수사 기준에 관한 지침'을, 법원은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를 따른다. 검찰은 수사 효율성을 위한 인신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법원은 불구속수사·재판의 원칙· 피의자 방어권 등 인권보장에 중점을 두고 발부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태훈(60)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 청구자는 사안의 경중이 영장발부의 결정적인 기준이 돼야 한다고 보는 반면, 발부자는 도망의 염려나 증거인멸의 염려와 같은 구속사유를 개별적·종합적으로 심사해 발부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장항고제 도입, 발부기준 정립 도움" =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기각당한 경우 내부적으로 영장재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재청구 하기를결정하면 보강수사 등을 통해 보완 후 영장을 재청구하게 된다. 정유라·우병우 건에 대해서도 이런 절차에 따라 영장이 재청구됐다.

하지만 판사가 거듭 영장을 기각하면 이에 대해 사실상 다른 불복 방법이 없어 재청구가 가지는 의미가 없게 된다. 이에 검찰은 줄곧 영장항고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항고제의 도입은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검찰이 구속수사를 하는 데 있어 참고 기준이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피의자 인권보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법원은 줄곧 반대해 왔다. 영장기각에 대한 항고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지 않으며, 영장재청구라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례도 구속영장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에 대해 일관되게 항고불허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1986년 "증거보전청구 기각결정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불복을 할 수가 없다"고 판시한 데 이어 2005년에는 "구속영장기각처분의 법적 성질은 '명령'에 해당하고, 항고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정'에 한하므로 구속영장기각처분은 항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론스타 사건에서 영장항고에 대한 법원의 기존 태도를 변경시키려고 구속영장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의욕적으로 제기했지만 2006년 대법원은 불허했다.

국회선 '차후' 논의 입법 미뤄 = 법원과 검찰은 입법을 통한 영장항고제 도입 시도에 있어서도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법무부는 2003년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영장재판에 대한 불복제도를 명문화했다. 당시 법무부는 형소법 제416조의 준항고 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04년 개정안을 발표했다.

같은 해 대법원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사법개혁 전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2005년엔 이 논의를 입법화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법무부의 형소법 개정안이 백지화됐다. 이후 법원에서 영장재판에 대한 불복방법 도입에 관해 입법적 명문화를 수용하기로 했는데, 법원에서 제시한 법안은 검찰의 준항고 체제와 다른 항고체제의 법안이었다. 결국 법원의 개정안이 사개추위안으로 관철돼 국회 심의과정에 들어갔다.

국회서도 영장재판에 대한 불복제도의 필요성에 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기는 했다. 하지만 영장재판 불복제도가 영장단계서의 보석제도 논의와 연계되면서 입법적 논의가 미뤄지게 됐다. 영장단계의 보석제도 도입에 대해 찬반론이 대립하면서 그 도입을 위해 좀 더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영장재판에 대한 불복도 차후에 함께 논의하는 것으로 미뤄진 것이다.

장승주 기자 5425@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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