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학생들, 숲으로 떠나는 여행

"이기는 것보다 최선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2017-06-26 12:48:15 게재

"게임보다 재미있는 캠핑, 가족과 함께 해봤으면…"

몸 불편한 친구 식판 챙겨주며 "그동안 미안"

"왜 식사를 안해?" "명훈(가명·2학년)이가 씻으러 갔는데 아직 안와서요. 함께 먹으려고요"

"명훈이는 몸이 불편해서 혼자 잘 못하거든요"

제주 중학교 남학생 28명이 21일 충남 서천군 '국립희리산자연휴양림'에 둥지를 세웠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1, 2학년 학생들이 3박4일 일정으로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에 몸을 실었다. 광주공항에서 송정역까지는 지하철을 탔다. 아이들은 '지하철은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인솔교사 놀림에 '속았다'며 깔깔댔다. 새마을호로 갈아탄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기차가 신기하다며 휴대전화기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런닝맨을 마친 아이들이 "이기는 것보나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라고 적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텐트를 치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식사는 재료를 타다 멘토와 함께 토론하며 준비했다. "숲에서 먹는 바비큐와 부대찌개는 제주 삼겹살보다 더 맛있다"고 말했다.

첫날 숲에 든 아이들은 밥을 하거나 찌개를 끓이는데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할지 망설였다. 휴지를 줍거나 주변 정리를 하는 것도 주변 눈치를 봤다. 학교에서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식사준비


숲에 든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게임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영삼(가명·중1)이는 욕하는 주변 친구들이 밉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모두 귤 농장으로 일하러 다니기 때문에 집에 늦게 온다고 했다. 영삼이는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거의 혼자 생활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부분 인터넷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놨다.

조별 요리시간에는 요리실패 원인을 친구에게 돌리기도 했다.

생태원 거북이


오진수군은 "조별로 점심에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너무 매워 조금밖에 못 먹었다. 마요네즈를 넣으면 맛이 순해진다는 친구 말에 많이 넣었다가 실패했다"며 씩씩거렸다. 조 친구들은 "대신 토란대 나물과 산나물을 넣은 주먹밥을 만들어 진수랑 맛있게 먹었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2시간 반짜리 등산프로그램에 진저리를 쳤다. 숨이 콱콱 막히는 게 싫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숨이 차는 운동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등산 완주 기념으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제주 삼겹살보다 맛이 좋다는 아이들은 등산을 한 번 더 할 수도 있다며 웃었다.

"제주도에 살면서도 한라산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희리산 정상에서 본 노을은 정말 예뻤어요."

우리조가 1등


쌤, 저도 할 수 있어요 = 하룻밤을 숲에서 지낸 아이들은 조금씩 숲에 적응했다. 밥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같은 조 친구에게는 '욕좀 그만해'라며 지적을 하기도 했다.

늦은 밤 멘토와 대화시간에는 평소에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쌤! 저 학교 다니기 싫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부터 집에서 부모님과 벌어진 크고 작은 불편한 이야기들이 숲 속 밤하늘로 퍼졌나갔다. 야식으로는 수박과 삶은 감자. 아이들은 텐트 안에 남아있거나 씻으러 간 친구 몫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별이 보인다며 휴대폰을 들고 밤하늘 별자리를 찾기도 했다.

이번에 성공해야지


학교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명훈이가 멘토와 교사의 만류에도 '런닝맨'에 도전했다.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더디고 힘들게 내뱉었다. 희리산 휴양림 곳곳에 설치된 코스를 통화해야만 본 게임에 합류하는 어려운 코스다. 단체 줄넘기, 탁구공을 수저에 담아 떨어트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전달하는 집중력 테스트, 발목을 묶고 뛰는 삼인삼각 달리기 등 팀원끼리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중간에 탈락한다. 하지만 명훈이는 쉽지 않은 코스를 완벽하게 통과하고 등에 붙인 이름표를 떼이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뛰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이 터지게 뛰어 봤다는 명훈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쌤! 저도 친구 이름표를 떼었어요"라며 손에 쥔 친구 이름표를 흔들었다.

숲에 걸어 논 대형 천에 물감을 잔뜩 묻힌 화살이 박혔다.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물든 천위에 글씨를 써내려 갔다. 학교가기 싫다는 이유,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썼다. 런닝맨을 뛰고 난 소감도 적었다. 지훈(3학년)이는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글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줄넘기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과 대화를 했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변해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소원을 빌어 본적도, 소원을 생각해 본적도 없다는 아이들이 소원주머니를 만들어 숲 속 작은 나무 가지에 걸었다.

빙 둘러서서 눈을 감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나무에 걸어 논 작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친구 손을 잡고 '인증샷'을 찍기 시작했다. 오승환(서귀포중학교 3학년)군은 "게임을 줄여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요. 담배도 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원을 빌었어요"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스텝과 멘토로 활동중인 어준홍 씨는 "처음에는 작은 벌레에도 괴성을 지르고 무서워 난리입니다. 걸어서 2분이면 가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엄청 불편해 합니다. 그래도 3일을 숲속에서 보낸 아이들이 도시 생활에서 겪어보지 못한 숲의 안락함에 빠르게 적응합니다"

휴대폰 게임 안하니 욕설도 줄어 = 마지막 날 아침 아이들은 소나무 가지에서 날아다니는 청설모를 따라 산책을 했다. 다양한 새소리를 휴대폰에 녹음하는 여유를 부렸다. 아침을 해결한 아이들은 텐트를 정리하고 주변 청소를 했다. 휴대폰으로 부모님께 안부문자를 보냈다는 아이들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3일 동안 게임을 참았다는 동훈이는 욕설을 거의 안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숲 강사가 주문한 나뭇잎을 따서 맞추는 빙고게임에 집중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분하고 칡과 싸리나무를 처음 만져봤다. 산초 잎을 따서 얼굴에 붙이며 인디언 분장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아도 숲에서 놀이를 만들어 냈고, 숲의 질서를 배웠다.

마지막 코스인 국립생태원으로 이동했다. 생태해설사를 따라 생태원 에코리움 구석구석 탐방에 나섰다. 열대어류와 10미터 넘게 자란 고무나무, 열대식물에 대해 배웠다. 사막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식물의 성장과정을 들었다.

김태종(제주시교육청 학교생활안전과)경력관은 "학교에서는 말문을 닫거나 소극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숲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학교생활에 힘든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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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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