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논란에 정부 긴급진화 나서

2017-06-27 10:21:07 게재

"경유세율 인상계획 없다"

주세체계 개편계획도 부인

면세자 축소, 단계적 추진

환경단체 "일방적 발표"

기획재정부가 경유세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내달 공청회를 앞둔 상태에서 관계부처 간 충분한 협의 없이 결론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공청회에서 발표될 연구용역결과를 사실상 미리 공개한 것도 논란이다. 국민의견수렴이란 공청회의 취지 자체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진화에 나선 이유는 = 26일 세제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은 "아직 (국책연구소) 공청회 안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확인결과 경유 상대가격 인상의 (미세먼지 저감) 실효성이 낮게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는 경유세율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현 정부에서는 올릴 계획이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했다. 경유세 인상은 미세먼지 저감 수단으로 검토했던 것인데, 이 수단으로서의 경유세 인상은 앞으로 고려할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기재부가 이날 긴급하게 입장을 밝힌 것은 경유차 소유자들을 중심으로 한 여론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국책연구소들이 경유세 인상이 미세먼지 저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마치 정부가 경유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처럼 일부 언론이 보도한 직후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27일 "관련 기사가 보도된 뒤 댓글이 수백개가 달리는 등 '조세저항'을 연상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용역결과를 미리 밝혀서라도, 사실과 다르게 확산되는 여론을 긴급히 달랠 필요가 있었다는 취지다.

최영록 실장의 설명은 이렇다. 미세먼지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해외(중국) 원인이 상당히 크고, 유류소비가 가격 변화에 비탄력적이어서 가격을 올려도 사용이 줄어드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용역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 화물사업자들이 유가보조금을 받고 있어 세율 조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차량이 상당하고, 결과적으로 경유세 인상에 따라 유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영세 자영업자들 부담이 늘어나는 부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얘기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서의 실효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반면, 국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실상 증세에 대한 반발 여론에 갑작스레 기존에 추진해오던 방안을 서둘러 철회한 모양새다. 이 때문에 경유값 인상 대신 노후차량 교체 지원, 미세먼지 저감기술 지원 등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면세자를 줄이기 위한 소득세 공제 제도 개선,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주세 과세 체계 개편 등은 중장기적으로 연구해야 할 개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환경단체 반발 = 기재부의 전격적 입장표명에 다른 부처들과 환경단체는 당혹스런 표정이다. 공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해보고 결론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환경부와 시민단체들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선 경유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기재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는 오는 7월 4일 공청회를 통해 에너지 상대가격 합리적 조정방안 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이 연구용역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교통연구원이 1년간 연구한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여론수렴 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세제개편에 관한 용역결과를 즉각 공개하고 열린 자세로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도 전에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나와서 연구용역 결과를 단정 짓고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부세 논란 데자뷰 = 기재부의 이례적인 신속 대응은 '증세 문제의 휘발성' 때문이다. 특히 역대정부의 증세시도가 번번이 여론의 반발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경험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근혜 정부 첫해(2013년)에는 의료-교육비 등의 근로자 세액공제를 추진하면서 증세를 '거위 깃털 뽑기'에 비유했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참여정부때에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 과정에서 혹독한 '여론과의 전쟁'을 겪어야 했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여당이 가칭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조세·재정특위)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조세·재정특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3월 출범했던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월 1일 종부세 도입 전후에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자 사회적 합의를 통한 조세 개혁을 목적으로 기구를 신설한 것이다.

당시 조세개혁특위는 1년 단위로 개선해야 할 단기 과제를 당해 세법 개정안에 담는 한편, 향후 10년에 걸쳐 2015년까지 추진해야 할 중장기 과제를 별도로 선정하는 작업을 맡았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성홍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