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 사회적 치유 필요하다│③전문가 인터뷰 -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교수

"의료만으로는 한계, 사회적 애도·존중 뒤따라야 치유 가능"

2017-08-16 10:08:04 게재

피해자들에게 평생 지원한다는 치유정책방향 필요 … "대형참사 대응인력 갖춘 국립트라우마센터 도입 서둘러야"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고인이 된 가족들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많은 시민들 가슴 속에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트라우마는 의료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말한다. 사회 공동체적 치유활동이 있어야 충격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꿈꾸고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 김규철 기자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심리지원 활동에 앞장 서 온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뒤얽힌 세월호참사 치유 방법을 물었다.

세월호 피해자들이 아직도 장례 중이다. 공적 치유활동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대형참사로 빚어진 트라우마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나

재난 수준의 대형참사 트라우마는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단순한 강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트라우마는 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다. 의료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 그 선을 넘어 섰다. 참사피해자들은 아파도 자신이 견디겠다며 병원을 찾지 않는다. 세월호 가족들도 힘들더라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내 새끼가 그렇게 죽었는데'라는 생각에 아파도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간다고 하더라고 우리나라 같은 3분 진료환경에서는 더욱 감당을 못한다.

일제시대 위안부 피해자, 제주4·3항쟁, 광주 5·18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들 모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이 일차적 책임이 있다. 당시 치유관점에서 접근하는 조직도 체계도 없었다. 외국의 '캄보디아 킬링필드' '유대인 홀로코스트' 등도 모두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줬다. 분노나 화가 풀리지 않으면 대를 이어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참사 초기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안산트라우마(온마음)센터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참사 2주 만에 만들어졌다. 광주트라우마센터 대구트라우마센터가 수십년 지나 생긴 것에 비해 획기적이다. 2주동안 300여명이 넘는 의사들이 자원봉사하고 트라우마센터 직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들과 박근혜정부 사이에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국가가 추진한다는 많은 것들이 어긋났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센터직원들이 피해자들을 찾아 가 상담활동을 진행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부족한 점은

참사를 당한 분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가 힘들다. 그런데 도우러 가는 센터 직원들이 직업 안정성이 없다. 내년에 재계약이 안 될 수 있으니까. 지금도 1년씩 계약하고 센터 조직은 5년 존속으로 되어 있으니 활동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부족하다. 1년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버텨준 센터 직원들이 있었다. 이런 노력이 있어 세월호 피해자들이 마음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고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치유 어떻게 해야 하나

세월호 가족들은 애도와 존중을 받으며 가족과 이별을 해야 할 시간에 전쟁을 했다. 지난 정부는 대통령 한번 보자고 하니까 경찰로 막고 물대포를 쐈다. 정치적 이슈까지 갈 일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안아주면 되는 문제였다. 예우가 중요하다.

문재인대통령이 5·18광주 관련 유복자 딸을 한 번 안아주니까 얼마나 치유가 됐느냐. '교통사고인데 왜 대통령까지 나서야 하느냐'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국민적 트라우마가 되었다면 그런 예우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과 좋은 기억을 만들어서 별이 됐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거리(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잘하는 게 미국이다. 군인들을 영웅으로 보지 않나. 그래서 트라우마가 줄어 들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정신건강의학적 치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예우나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활동이 중요하다.

나라가 어디까지 치유 지원을 해야 합당한가

미국의 경우 9·11사태가 16년 지났는데 빌딩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조사도 하고 있다. 세월호지원에서는 지난해 3월 신체질환 지원을 중지했다. 심리지원만 5년간 진행한다고 세월호 피해 구제관련 특별법 시행령에 있다. 지난 2, 3년간 세월호 피해자들 특히 유가족들은 병원에 안 오고 트라우마센터에 안 가고 광화문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신체질환 지원기간이 끝났고 심리지원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 쓰나미 이후 자살 발생이 5년이 지나면서 늘었다. 세월호 가족들은 악으로 견디고 있다. 무너지기 직전이다.

시신도 아직 다 수습이 안됐다. 아직도 유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열흘에 한 번씩 안산분향소 가족대기실에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아직도 상례중인 것이다. 그분들의 치유는 시작도 안 됐다. 나라에서 모든 배상 보상 이런 것을 진행할 때 트라우마센터와 연계해 트라우마 검사 결과에 따라 치유가 필요하니 어떤 치유지원을 받게 하는 식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진상규명이 아직 안 되고 있다.

가족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었구나'라는 납득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루머가 많았고 사건 전체가 잘 밝혀지지 않았다. 특별조사위원회가 파행됐고 예산낭비위원회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결됐다. 투명한 조사과정이 없으면 장례와 치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립트라우마센터 도입을 강조해 왔다.

대형 참사 트라우마 대처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정신건강의학에서 최고 수준의 진료가 필요하고 돕는 임상복지사도 특화된 영역을 가지고 있다. 평생해도 쉽지 않은데 보건복지부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 트라우마TF(태스크포스) 만들어 놓았다면서 그 인력에게 평소에는 일반 진료를 시키고 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국립트라우마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소에 훈련 연구를 하다가 재난사태가 생기면 집중 지원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만들 필요 없이 나라에 하나만 있으면 된다. 국립암센터처럼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 몇 명 고용해서 좋은 자원을 만들어 놓고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전국적인 재난치유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 된다. 이런 조직이 없으면 대형 참사에 온전히 대처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립트라우마센터 관련 4개 법안이 나왔지만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 정책공약에 들어가 있으니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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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김형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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