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경이 세종시에 있어야 하는 이유

2017-08-22 10:54:49 게재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해체된 해양경찰청이 부활했다.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중앙소방본부도 외청으로 복원됐다. 세월호 사고 당시 논란이 됐던 '청와대 중심의 재난 콘트롤타워'가 문재인정부 들어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재난안전학개론'은 완성됐지만 각론이 문제다. 정치권과 관계 부처가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다'는 미명 하에 졸속으로 해양경찰청을 세종시에서 인천 송도의 옛 청사로 이주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환원이지 가정집도 아닌 중앙행정기관을 1년 6개월 만에 살던 곳으로 또 강제 이주를 시킨다는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광화문 1번가'와 해경 내부망에 정부와 지휘부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예산낭비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업무 비효율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놓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다. 해경은 세종으로 본청을 이전하면서 상황실 설치와 집기류 구매, 이사비용 등으로 무려 4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인천으로 다시 이전하면 중부지방해양경찰청과 인천해양경찰서 등 2개 기관의 이전비용 등으로 또 400억원이 족히 들어간다.

박 전 대통령의 '강제이주' 명령 한마디에 400억원을 날리더니, 이번엔 대통령의 공약이행으로 혈세를 쓰겠다고 한다. 국가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400명에 달하는 직원과 가족들이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 고통과 반인권은 그 다음 문제다.

예산낭비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업무 비효율이다. 그동안 정부조직에서 '외딴섬'으로 분류됐던 해경은 세종시에 둥지를 틀면서 중앙행정기관으로 면모를 갖췄다. 세종청사에는 재난상황을 총괄 지휘하는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설치돼 있다. 태풍과 지진 등 자연재해는 물론 화재 등 사회적 재난 때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이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며 지휘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만 인천으로 '분가'하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구축한 재난협업체계가 무너지고, 골든타임을 까먹어 대형재난의 대처능력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양을 업무 대상으로 하는 기관인 해군본부는 충남 계룡시, 해양수산부는 세종시에 있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가 되는 행정안전부도 내년에는 세종시로 이주한다.

바다는 인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다. 해양경찰청은 행정수도 중심에서 동·서·남해는 물론 제주 현장 상황까지 지원하고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그렇기에 중앙행정기관인 해경은 국토의 중심인 세종에 있어야 한다.

해경 본청이 인천에 있다고 해서 중국어선 출현이 수그러드는 것도 아니다. 해경청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부지방해경본부장을 치안감에서 치안정감으로 격상했다. 지난 4월에는 440여명 규모의 '서해5도특별경비단'까지 창설해 인천에 배치했다. 해경본부가 인천에 있을 때보다 조직이 더 커졌다.

본청 이전비용 400억원이면 1만명 일자리 창출

인천지역 정치권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NLL) 해양주권수호, 불법 중국어선 단속이라는 명분은 과거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같은 주장이라면 소방청과 경찰청도 재난과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20일 국민인수위 100일 성과 보고대회를 통해 "국민들은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고 일자리에 쓰는 세금을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해경 본청을 이전하는 비용이면 1만명의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예산이다. 세종시와 지방에 근무하는 해경의 99%는 '세종 잔류'를 희망한다고 한다.

김창영 한국안전인증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