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대출의 기술

2017-09-12 11:04:32 게재
은행 문턱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건립된 조선저축은행(현 SC제일은행)은 출입구에 계단을 만들지 않았다. 대공황기인 당시 전비마련을 위해 서민의 예금을 끌어들이려 설립된 은행인 만큼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문턱'을 없앤 것이다.

하지만 돈이 귀했던 시절인 70~80년대에 은행문턱은 서민들에게 높고도 높았다. 필자가 사회초년생 시절인 90년대만 해도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특권'이나 다름없었다. 대출신청을 하면 퇴짜 맞기 일쑤일 만큼 은행문턱을 넘기가 힘들었다.

문턱 낮아진 은행

그런데 요즘은 출근길에 대출안내 전단을 돌리는 은행직원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은행문턱이 낮아졌다. 또 대출, 즉 빚에 대한 생각도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빚을 두려워하고 꺼려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빚에 대해 퍽이나 여유로워졌다. 대출을 끼고 집 산 사람들은 '집의 진짜 주인은 은행'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고 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은 아예 빚이 아니라 '레버리지'라는 근사한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지난 3월말 기준 135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총 인구수(5100만명)로 나누면 국민 1인당 2665만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학적인 규모도 그렇지만 멈출 줄을 모르는 증가세도 문제다. 가계부채는 발표 때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기록 제조기'다. 특히 올해 들어 부동산시장 과열 등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말할 것도 없이 한번 만들어 놓으면 필요할 때마다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꺼내 쓸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대출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가계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금리인상'이라는 시한폭탄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내려가던 시장금리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고 있고 특히 올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2~3차례 올리면 국내금리도 덩달아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말 기준 국내 가계대출의 71.6%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금리가 오르면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부담으로 고스란히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부채탈출'을 서둘러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금상환'을 통해 빚을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뻔한 살림에 갑자기 목돈을 들여 대출을 갚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당장의 '금리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부채에서 벗어나는 기간도 짧아지고 부채탈출의 가능성도 커진다.

우선 기존 대출의 금리부담을 더는 방법이다. 대출금리는 일단 정해지면 만기(고정금리)나 금리변동주기 도래 전(변동금리)까지'고정불변'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금리인하 요구권'이라는 것이 있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 처음 대출을 받았을 때나 연장했을 때에 비해 신용상태가 현저하게 좋아졌을 경우 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신용·담보대출과 개인·기업대출 구분 없이 모두 적용된다.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신용등급 상승·취업·승진·전문자격증 취득 등이다.

부채 탈출하려면 원금부터 상환

반대로 대출이자 연체만큼은 절대 피해야 한다. 대출이자 최종납입일 이후 1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자를 납부하지 않으면 연체금리가 붙는데 통상 정상금리에 6~8%포인트가 추가된 고금리이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연체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일부라도 이자를 갚는 게 유리하다. 납입한 이자만큼 이자납일일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만원을 연4% 금리로 빌리고 이자납입일은 매달 25일이라고 하자. 하루치 이자가 2190원이므로 매달 25일에 6만5730원(30일기준)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마침 수중에 5000원밖에 없다면 '나중에 한꺼번에 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루지 말고 5000원으로 2일치 이자를 내면 이자납일일은 이틀이 늦춰진 27일이 된다. 결론은 이자의 일부라도 제 때 내면 며칠 치의 연체이자라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 대출을 받는다면 은행들이 제공하는 금리우대 혜택을 꼼꼼히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이 고객의 예금과 신용·체크카드 이용, 자동이체 등 거래실적에 따라 대출금리를 깎아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의 'KB WISE 직장인대출'은 급여 또는 연금이체·KB국민카드 사용실적·자동이체·KB스타뱅킹 가입, 적립식 예금거래 등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대출금리를 최대 연0.9%포인트 낮출 수 있다. 따라서 한 푼이라도 이자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을 은행에 금융거래를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KB공무원 우대대출' 등 은행들이 공무원·경찰·군인·교직원·간호사 등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신용대출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니 직업이나 직장 등에 따른 금리우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요즘 같은 신용사회에서는 잘 빌리는 것도 능력이다.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