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여성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바뀐다

2017-09-01 11:05:03 게재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창비 / 1만5000원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 사건들이 굉장히 기이하게 들려야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행동하는 데도 왜 세상은 바뀌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여성들에게 우리가 승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5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 50주년홀에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잘 알려진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환경·반핵·인권운동 활동가 리베카 솔닛의 기자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날 간담회는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등 3권의 책이 한국에서 발간되는 것을 기념한 자리였다.

그는 발간되는 3권의 책은 모두 '저항'에 대해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라는 단어로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후속작이다. 그는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혐오 살인, 여성을 배제하는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 시작한 여자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절망하지 않고 저항하며 희망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천년간 지속돼 온 여성 차별의 문제를 50년 새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맨스플레인'을 널리 알렸듯 "어떤 사안에 대해 정확하게 규정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성폭행 피해가 각각 개별적인 사건인 것 같지만 각각의 사건들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돼 있다"면서 '이름 짓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해방을 위한 운동"이라면서 "여성 문제만 가지고 페미니즘이 단독으로 행동한다면 사회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불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빈곤 동성애 등 다른 제반 문제들과 연결해 종합적으로 접근한다면 아주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년 전쯤 쓴 '걷기의 인문학'에서 그는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의 힘'에 주목한다. 그는 "걷기라는 행위는 육체와 정신이 합일을 이룬다는 의미로 영어권에서 많이 쓰인다"면서 "걷기는 지난해 한국의 대통령 탄핵처럼 역사 속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걷기'는 비폭력, 저항과 봉기의 움직임과 연결되며 연대의 순간, 결집의 순간은 차이를 사라지게 하고 함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걷기의 인문학' 한국어판 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지난해 한국인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다"고 밝혔다.

2004년 출간 이래 2006년 제2판을 바탕으로 국내 출간됐던 '어둠 속의 희망'도 최근의 변화를 반영, 재출간됐다.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전자책으로 일정 기간 무료 배포되면서 3만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는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는 미국 좌파들이 이라크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실패했을 때였다"면서 "절망은 '우리가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기정사실화할 때 생기며 희망은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행동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 때 생긴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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