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실패지역, 도시재생 모범사업으로 '둔갑'

2017-09-06 10:15:15 게재

서울시, 돈의문 뉴타운 1구역 건축비엔날레 개최지로 선정

지난해 강제철거 과정에서 주민 분신, 재개발 상처 아물지 않아

철거민 "보상 협의도 안 끝났는데 건축비엔날레 개최가 웬말"

"이따금 그곳을 지날때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분신 주민 유가족)

2016년 4월, 재개발 분쟁이 극한으로 치닫던 '돈의 제1재정비 촉진구역(돈의문 뉴타운 1구역)'에서 분신한 주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합의 계속되는 약속 번복과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벼랑 끝에 몰린 주민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위)2016년 4월 돈의문 1구역 모습.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상가세입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걸려 있다. 사진 남준기 기자 (아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2017년 9월 3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모습. 사진 연합뉴스


2017년 9월, 그 자리에는 도시재생이란 상표를 달고 '박물관 마을'이 들어섰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이곳은 서울시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상처투성이 재개발 지역이 도시재생 모범 사업지로 둔갑했다.

서울시는 재개발 갈등이 끝나지 않은 돈의문 뉴타운 1구역 일부를 한옥박물관 마을로 리모델링해 지난 2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개관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의 모범 사업지로 꼽으며 건축비엔날레의 중심 전시지역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 자리는 대표적 재개발 지역인 돈의문 뉴타운 1구역의 일부다.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조합이 아파트 단지(경희궁 자이)의 용적률을 올려 받는 조건으로 시에 이 구역을 기부채납하기로 했고 시는 근린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면서 강제 철거가 진행됐고 이곳에 살거나 장사를 했던 주민, 세입자 모두가 쫓겨났다. 하지만 시는 1800년대 옛 도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 등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철거 계획을 취소하고 마을 전체를 보존해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지었다.

시는 이곳을 서울건축비엔날레의 개최 장소 및 중심 무대로 소개하는 등 박물관 마을 홍보에 여념이 없다.

서울시에 따르면 박물관 마을엔 한옥들을 묶은 청소년수련시설(유스호스텔)과 돈의문전시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선다. 마을 중심에는 도시건축센터가 세워졌다. 축제 기간엔 식당과 카페도 운영된다. 30여개 건물마다 각종 전시도 열린다.

박원순 시장도 가세했다. 박 시장은 4일 열린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 개회식 기조강연에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는 돈의문박물관 마을은 재미있는 곳"이라며 "서울시는 철거위기에 처한 이 동네를 철거하지 않고 주민의 삶과 문화가 살아있는 시민 공유공간으로 재생시켰다.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시장도 마을 조성 뒤에 담긴 상처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서울의 화려한 발전 뒤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다양한 도시의 문제들이 숨어 있다"면서 "양적성장 위주의 개발은 다양한 가치를 소외시켰고 대규모 철거와 재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과거를 언급했다.

돈의문 1구역 재개발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근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가거나 천막에서 농성을 하는 이들도 있다.

구역 내 13층 높이의 경찰박물관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이전 협의가 끝나지 않아 내년 10월까지 이주가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의문1구역에 거주하던 8명의 상인들은 아직도 보상 문제를 두고 조합과 서울시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인 김 모씨는 "서울시가 쫓겨난 주민들에게 박물관 마을 안에 있는 상가에 우선 입주권을 준다는 말이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보상 문제도 안 끝났는데 박물관 마을을 서둘러 만들고 도시재생 대표사업이라고 버젓이 내세우는 건 앞뒤가 한참 바뀐 처사"라고 꼬집었다.

시는 건축비엔날레가 끝나면 박물관 마을을 역사전시관, 유스호스텔, 서점 등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돈의문 1구역이 도시재생 대표 사업지로 바뀐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한 도시재생 전문가는 "재생이라기보다는 전면 철거 과정에서 일부 지역을 유지하는데 그친 것 으로 봐야 한다" 고 말했다. 김한울 종로 지역활동가는 "아파트 단지를 만들면서 무리한 공원 조성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거주자들이 쫓겨나고 분신 사고까지 일어난 곳" 이라며 그런 곳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건 염치 없는 일 이라고 지적했다.

홍범택 이제형 기자 durum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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