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달러 폐기 행렬 동참한다

2017-09-11 12:38:53 게재

위안·루블화 등으로 구성된 통화바스켓 추진

푸틴 "특정통화의 과도한 지배력 극복해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 달러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네수엘라는 생필품에 적용되는 디프로(dipro)와 생필품 이외 품목,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디콤(dicom) 등 미 달러에 이중으로 고정시킨 환율제를 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8일 새로 출범시킨 제헌의회를 축하하는 기념식에서 "베네수엘라는 국제적 결제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달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복수통화로 구성된 환율바스켓 제도를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들(미국)이 달러로 우리를 괴롭힌다면, 우리는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인도 루피화, 유로화 등을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나라다. 그러나 최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수백만명의 국민이 굶주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13년 마두로가 집권할 당시의 볼리바르(베네수엘라 화폐) 가치를1000달러로 비유한다면, 현재 가치는 1.20달러로 대폭 급락했다. 게다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경제봉쇄를 단행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미국 정보보안 전문가 윌리엄 R. 클락의 2005년 저서 '페트로달러 전쟁'(Petrodollar Warfare)에 따르면 산유국이 달러 이외의 통화로 석유대금을 결제하려 한다면, 미 달러 체제가 직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국이 군사, 경제적으로 개입한다.

2000년 이라크가 대표적 사례다. 이라크는 당시 석유수출 대금으로 달러 대신 유로화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2003년 2월 16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라크가 달러 대신 유로화를 선택하면서 상당한 순수익을 얻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음달인 3월 20일부터 4월 14일까지 이라크를 침공, 달러 체제를 복원시켰다.

2011년 리비아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금과 연동된 아프리카 통합 화폐를 추진중이었다. 아프리카산 석유를 사고팔면서 미 달러나 세파프랑(옛 프랑스 식민지국가들이 사용하는 화폐)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지배적 통화체제를 벗어나려는 일이 국가전복을 부를 정도로 중대한가 하는 의구심도 많았다. 믿기 어려운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이를 증명한 것은 미국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이었다. 2011년 3월 클린턴 전 장관이 오랜 친구이자 정책자문인 시드니 블루멘털에게서 받은 이메일에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이유는 리비아산 석유를 탐낸다기보다, 카다피가 자국의 막대한 금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화체제를 추진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훼손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클린턴은 개인 이메일 서버를 이용해 기밀문서를 주고받았다. 그의 개인 서버 이메일은 결국 해킹당해 일반에 알려졌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나토 회원국은 카다피에 반대하는 반군을 지원해 결국 '카다피 살해'와 '리비아 전복'이라는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냈다.

미국으로부터 오랜 경제제재를 받았던 이란도 석유결제대금으로 달러 대신 위안을 쓰고 있다. 또 카타르는 이란과 공유하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유전인 '사우스파르스유전'을 함께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우디 등의 미움을 받고 있다. 이란과 카타르는 국제무대에서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베네수엘라가 달러 폐기 행렬에 동참하려 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인 마이크 폼페오는 지난 7월 아스펜연구소 주최 안보포럼에서 "베네수엘라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며 우리 CIA는 베네수엘라 내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남미 TV네트워크인 '텔레수르'와의 인터뷰에서 "CIA와 미 행정부는 멕시코, 콜롬비아와 연합해 베네수엘라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2일 "미국은 베네수엘라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두고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군사적 개입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달러를 버린 나라들은 예외없이 국가전복의 대상이 됐다. 이제 베네수엘라 차례일까. 이와 관련,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 맞서는 강대국들이 최근 심상치않은 움직임을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4~5일 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 5개국 정상회의가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경제체제가 불공정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며 "국제 금융체제를 개혁하고 소수의 특정 기축통화가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브라질 저명 언론인이자 지정학 전문가인 페페 에스코바는 "소수 특정 기축통화의 지배력을 극복한다는 말은 석유달러, 미 달러를 우회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달러 중심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게임 양상을 뒤흔들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조만간 위안화로 결제하고 금으로 전환 가능한 원유선물계약을 선보일 계획이다(내일신문 9월 4일 11면 '금 선물로 바꾸는 위안화 결제 원유 선물계약 나온다' 참고). 현실화한다면 국제석유시장에서 달러의 지위가 큰 타격을 받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를 언제든 경제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도 크게 훼손된다.

에스코바는 "석유와 위안, 금의 삼각체제가 형성되면 관련 참여국들에게는 '윈윈윈'(win-win-win) 게임이 될 것"이라며 "브릭스를 넘어 아프리카와 중남미, 신흥 아시아국, 중동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포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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