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인정하고, 대처방안 마련하겠다"

2017-09-14 10:48:01 게재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 청문보고서 채택 안돼

전관예우 대처, 상고심제 도입, 관료화 방지 등 개혁 의지 확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은 이틀간 '이념성향'과 '경력'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 후보자가 '전관예우를 인정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등 사법개혁 의지를 확고하게 밝혔지만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은 무산됐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주요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후보자의 이념편향성에 대한 문제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경력을 놓고 '정치적 편향성'을 띤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후보자의 경력으로, 지방법원장이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이 됐을 경우 과연 전원합의를 책임지고 끌고 갈 수 있느냐는 문제다.

잠시 눈을 감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일차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여야 청문위원들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김 후보자의 경력과 이념편향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학술연구모임 성향 논란 = 여야는 13일 김 후보자에 대해 이틀째 이념성향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김 후보자의 이념성향을 집중 추궁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에게 이념적 편향성이 없다고 적극 방어했다.

이런 공방은 김 후보자가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바 있기 때문에 벌어졌다. 김 후보자는 또 2015년 11월 서울고법 행정10부 재판장을 맡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 노조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보수정당들은 해당 판결에 대한 비판한 바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후보자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인권법연구회를 만든 분"이라며 "이런 사태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같은 당 주광덕 의원도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이 연합해 사법기관을 다 채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전희경 의원은 전날에 이어 "김 후보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인 동성애, 전교조 합법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 복무 허용 등에 대해 지난 청문회 답변이나 서면 질의서에서 명확한 답변을 내지 않고 논점을 피해갔다"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방향키를 쥐고 계신 분이 대답을 안 하면 안 된다"고 공세를 펼쳤다.

김 후보자가 "제가 여기서 답변을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자 바른정당 주호영 위원장은 "국민은 대법원장의 생각을 알 권리가 있다"며 "그냥 넘어가서 되는 일이 아니다. 본인의 생각을 정제해서 표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의 대답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질의의 방향이 부적절했다"며 "우리나라 헌법은 소수자 보호를 중요가치로 여기는데, 흡사 소수자를 보호하는 가운데 다수가 불행해질 것처럼 질문이 이뤄지는 현장에 대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고 김 후보자를 방어했다. 이 의원은 "(야당에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 이야기하는데,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중 5%인 24명만이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라며 "법조계 내에 이보다 더 보수적인 사조직이자 전관예우 통로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 회원 중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은 25명이다. 그렇다면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어떤 성향의 조직으로 봐야 하나"고 반문했다. 같은 당 고용진 의원은 "공연히 색깔을 입히는 것은 사법개혁을 저지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단체가 아닌 학술단체라고 선을 그었다. 김 후보자는 "판사로서 개인의 기본권과 소수자 보호라는 사법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했을 뿐 이념적, 정치적으로 편향된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지방법원장, 대법원장 자격 미달? = 춘천지방법원장이 최종 경력인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주장도 논란이 됐다.

곽상도 의원은 "사법행정 경험이 춘천지법원장 1년이 전부"라며 "대법관 경력도 없이 대법원장을 하기엔 옷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김 후보자는 특허 부분 부장판사, 양승태 대법원장은 특허법원장이고 김 후보자는 춘천지법원장, 양 대법원장은 부산지법원장이다. 김 후보자는 강원도선관위원장이고 양 대법원장은 중앙선관위원장"이라며 "해도 해도 어찌 그리 전임의 밑으로만 다녔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일본은 이미 대법관 출신이 아닌 대법원장을 임명했고, 50세 대법원장을 임명한 사례가 있다"며 "대법관 경력이 없다는 것만 가지고 경험 부족이라고 하면 납득이 안 간다"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전날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제시한 법관평가서를 공개하면서 김 후보자의 자격 미달을 주장했지만 이를 인용한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 의원은 전날 청문회에서 "2012년 법관평가 5회 이상 대상이었던 174명 중 110위, 2013년 274명중 141등, 2014년 349명중 17위, 2015년 556명중 87위를 차지해, 평균적으로 중간 정도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서울변회의 법관평가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직접 법관평가서 작성에 참여한 여운국 변호사는 이날 참고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해 이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여 변호사는 "변호사 5명 이상이 평가에 참여한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모든 법관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며 "모든 변호사들이 참여한다면 좀더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점점 참여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 법관평가서는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법관평가서에서 대상이 된 것만으로 우수한 법관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여 변호사는 "김 후보자가 재판장일 때 배석판사로 있으면서 한 번도 진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대법원장으로서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며 "인권법연구회를 진보나 보수로 단정하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도 "지금 시대에서 요구하는 대법원장 상이 권위와 경력을 가져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우려하는 바는 알겠지만 저 나름대로 기여가 되는 능력이 있다. 그런 부분을 충분히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 사법개혁 의지 적극 내비쳐 = 김 후보자는 이날 사법부가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신뢰회복 방안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사법개혁 구상을 밝혀달라'는 질의에 대해 김 후보자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느 대법원장도 인정하지 않았던 전관예우를 인정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상고심제도 개선을 다시 한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상고허가제를 언급했다. 그는 "부작용으로 폐지됐던 제도인만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보겠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란 대법원이 상고 이유서와 원심판결 기록을 검토해 상고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1981년 도입됐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 1990년 폐지됐다.

김 후보자는 상고제도 개선과 동시에 대법관수를 늘리는 문제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법관 1명당) 1년에 3만건의 사건이 대법원에서 처리되는 상황이라 심급제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법관 증원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대법원 사건 적체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법 행정 개혁에 대한 방안도 내놓았다. 김 후보자는 "사법부가 관료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나누는 판사 이원화 제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전날 야당의 반대로 김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동의절차가 무리없이 진행될지는 여야 대치로 인해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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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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