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상인, 1년에 이자 10개월만 받아"

2017-12-01 10:47:59 게재

전성호 교수 "2개월은 회계 집중" … "정직을 최고의 사업으로 여겨"

"개성상인들이 사용한 회계장부를 연구하다보니 1년 이자계산이 맞지 않았는데 10개월로 했더니 정확히 일치하더라. 10개월만 이자를 받았고 2개월은 이자를 받지 않았다."

개성상인들이 현대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한 전성호(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말이다. 전 교수는 30일 한국공인회계사회 기자세미나에서 '개성회계는 어떻게 발전해 왔나?'를 주제로 한 전문가 특강에서 "개성상인들이 1년에 10개월만 이자를 받은 것은 무역거래가 중단되는 겨울동안 사업이 이뤄지지 않고 회계장부 정리에 집중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지 않는 기간을 무이자로 처리한 것이다.

그는 "개성상인들은 손익계산서를 중시했다"며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현재의 현금흐름과 미래에 갚아야 할 채무에 초점을 두고 철저히 수익과 비용 중심의 사고를 했다"고 말했다.

개성상인의 정신이 현대까지 이어졌다면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의 분식회계 문제로 외부감사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있지만 개성상인들은 '정직을 최고의 사업'으로 여겼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개성상인 회계장부 첫 장에는 '천은상길진'(天恩上吉辰)이 적혀있는데 하늘의 은혜를 성실히 기록하고 거짓이 없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회계장부 작성을 하늘의 은혜를 기록하는 일로 여길만큼 중요시했다.

전 교수는 "개성상인의 회계장부 작성은 예술이라고 할만큼 정교하고 밸런스가 딱 맞아 떨어진다"며 "받을 것과 줄 것이 끝난 사안은 해당 회계기록 위에 지붕표시를 해서 정직하게 내가 벌어들인 수익을 표시하고 거래가 남은 부분은 확연히 알 수 있게 정리했다"고 말했다.

개성상인들은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했다. 전 교수는 "본인이 속한 상단에 아들을 취업시켜 일하게 하는 일이 없고 다른 상단에서 밑바닥부터 일하고 거기서 성장하도록 시켰다"며 "세습이 이뤄지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투자자와 전문경영인의 손익 분배는 동일한 비율로 했다. 이익이 나면 정확히 반씩 나누고 손실이 나면 책임을 같이 졌다. 투자자와 경영인이 늘어나서 규모가 커져도 손익 분배 비율은 같았다. 전 교수는 "자본소유자가 전문경영인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만큼 전문경영인의 책임도 컸다"고 말했다.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라는 것이다.

화폐 주조에 있어서도 높은 신뢰성을 유지했다.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조선에서 유통된 화폐의 성분은 구리와 다른 금속의 비율이 8대2로 일정했다. 하지만 중국은 위폐가 많았고 화폐 성분에서 구리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제대로된 교환가치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전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기간 구리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한 화폐를 유통시킨 사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개성상인의 정신은 15세기 이후 점차 약해졌다. 15세기 급격한 기후변화로 극심한 기근이 발생하자 아시아 국가들이 상업국가에서 농업국가로 탈바꿈했고 회계는 '창고관리'로 바뀌었다는 게 전 교수의 분석이다.

전 교수는 "고려가 475년간 왕조를 이어간데 반해 거란은 219년, 북송과 남송은 각각 168년과 153년, 금나라 120년, 원나라 109년 등으로 유지기간이 짧다"며 "정확한 회계를 통해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춘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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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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