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단순한 삶의 철학

'욕망의 시대' 소박한 삶은 가능한가

2017-12-29 09:12:44 게재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1만7500원

먹고 입고 자는 것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자유의 규모를 늘리기로 한, 아파트와 도시를 떠나 멀고 불편함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물질적 풍요와 소비가 개인적 성취능력의 표본으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돈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자발적으로 멈추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을 축소하고 적게 일하기, 느리게 살기, 전원에서 자급자족하기, 내면의 가치에 집중하기 등 단순한 삶의 가치와 양식을 긍정하곤 한다.

현대는 그야말로 방향 상실의 시대다. 소유의 욕망이 풍요롭고 안락한 삶에 필요한 요소로 인정받는 동시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며 그 간극 사이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누적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삶이 언젠가 자신도 추구하고픈 삶의 목표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있는 자의 여유로, 심지어 과시적 행동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철학에세이 '단순한 삶의 철학'은 단순한 삶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숙고하며 오늘날 바람직한 삶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소크라테스부터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수많은 사상가와 현인들이 단순한 삶의 가치를 칭송하고 설파했지만 이들의 사상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왜 실패했는지, 풍요로운 생활을 버리고 검소하게 사는 것만이 올바른 삶인지, 현대 사회가 어떻게 모순된 교훈을 장려했는지 등 단순한 삶과 부의 추구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이끈다.

음식조차 소박했던 스파르타

어느 학파나 종교에서든 철학자 작가 등 현인들은 소박함과 단순한 삶의 가치를 칭송해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소박함과 단순한 삶이 도덕적이며 인간의 덕성을 길러준다고 봤고 다른 바람직한 덕목들과도 연관성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을 닦아준다고 믿었다.

소박함과 단순함을 옹호하는 주장들은 그와 대립되는 호화와 사치를 비판했고 심지어 사적 소유 자체를 문제 삼는 철학자도 있었다.

단순한 삶을 엄격하게 실천했던 국가 가운데 스파르타를 빼놓을 수 없다. 스파르타는 부에 무관심하도록 소박함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음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없었다. 그들에게 자주 배식되던 돼지고기와 선지, 식초, 소금을 넣어 만든 '검은 죽'은 현재까지도 맛없기로 악명이 자자한데 이마저도 배급량이 적었다. 형편없는 음식의 맛을 본 이방인들이 "왜 스파르타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국가를 이끄는 자는 그 어떤 재산도, 지위도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스파르타를 이상국가로 꼽았다. 스파르타의 가옥과 의복, 음식 그리고 도덕적 태도에 배어 있는 단순함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에피쿠로스는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대중을 현혹시키지 않고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모든 관계를 끊고 속박에서 벗어나는 삶이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했다.

욕망은 경제성장에 필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회의적 입장을 보였으나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18세기의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탐욕을 하나의 덕으로 환원시켰다.

그는 개인이 한결같이 "그들의 헛되고 한없는 욕망을 불태운다면" 의도치 않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흄 역시 존재의 본질은 개인의 욕망과 의지, 열정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마땅히 그와 같은 삶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없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게으름에 빠지고 삶의 즐거움을 잃게 된다"면서 "이는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의 욕심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이로 인해 많은 공공의 이익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발견되는 탐욕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초기에는 쉽사리 자리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인용하며 돈벌이를 장려한 노동윤리는 초기 자본주의의 토대가 됐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상은 근대 이후 사회를 주도하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욕망이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인정받는 동시에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된 것이다.

부자들이 예찬할 수 있는 '가난'

오늘날에는 단순한 삶에 제기되는 또 다른 맥락에서의 반론도 있다. 단순한 삶이 이미 경제적 안전망을 갖춘, 더 벌고 더 소비하는 삶의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유효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단순한 삶의 전도사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들 대부분은 엄청난 부를 지녔다.

이에 대해 이 책은 현대의 경제 체계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선다. 정부가 앞장서 부자들이 세 번째 주택을 갖기 이전에 가난한 이들에게 첫 번째 주택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자발적 가난'에 익숙해졌다며, 실제로 미국의 많은 중산층들이 만족할 수 없는 욕망으로부터 심리적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도 설명한다.

한편 이 책은 뉴욕 알프레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2002년부터 진행해 온 '1달러로 만드는 하루의 행복'이라는 강의를 토대로 쓰였다. 단순한 삶의 가치를 두고 첨예한 논쟁을 이끄는 토론수업과 더불어 학생들끼리 서로 머리를 자르게 하는 등 검약의 의미를 직접 실행해보도록 하는 실습을 병행하고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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