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국제적 긴장, 배후에 '금융전쟁' 시나리오"

2018-01-02 11:48:28 게재

영국 전 외교관 "북한·이란·러시아 갈등은 달러 구하기"

미국이 북한과 이란, 러시아와 갈등을 빚는 상황 배후에 금융전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공동외교안보정책 대표의 중동 정책자문(1997~2003년)을 지낸 영국의 전 외교관이자 정보기관(MI6) 요원인 앨러스테어 크룩은 1일 온라인매체 스트래티직컬처 기고에서 "미국이 국제적 긴장감을 높이는 이유는 달러패권을 지키려는 시도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하지만 그같은 시도가 오히려 달러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한 100위안과 5달러지폐 사진 연합뉴스

그에 따르면 러시아와 이란, 나아가 중국은 현존 글로벌 통화체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핵심 3개 국가다. 이들 국가의 국민을 모두 합하면 전 세계 절반에 해당한다. 북핵 이슈는 미국이 보다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다. 중국이 대북 강경책에 머뭇거린다는 이유든, 또는 중국의 경제굴기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이유든 간에 북한은 미국에게 좋은 팻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경제적, 정치적 우위를 회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준 보호주의 정책과 군사적 압박을 동원해 주요 경쟁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안보정책은 명백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수정주의'(revisionist) 적국으로, 미국은 두 나라와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기저에 깔린 맥락은 잠재적 적국들에게 그들의 위상에 합당한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명확하고 노골적이다.

하지만 숨겨진 부분이 있다. 미국이 그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가 없다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바람은 헛되고도 헛될 뿐이다. 달러의 위상은 심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부채가 폭발적 증가세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상황은 역설적이다. 군사적 적대관계와 외국에 대한 개입을 줄이겠다고, 서구의 문화적 정체정을 타국에 강제 이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약한 대선후보가 당선된 지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특히 북한과 이란에 대해 그렇다. 무엇이 트럼프 대통령을 바꿨을까. 북한과 이란이 추구하는 노선은 잘 알려져 있다. 깜짝 놀랄 일도 아니다. 물론 북한의 핵능력 발전이 미국 정보당국이 예상한 시기보다 빠르긴 하다. 미국은 2020~2021년쯤으로 내다봤지만, 북한은 2018년 올해 핵능력을 완성할 것으로 보인다. 2년여 빠르다. 그렇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받길 원한다는 것은 새로울 게 없는 사실이다.

이유는 바로 미 연방정부 부채와 임박한 부채상한(debt ceiling)이다. 미 군사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화당은 부채한도에 대해 근본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다. '작은 정부, 세금 감면, 개인의 자유'라는 기치를 내건 공화당 내 초강경파 하원의원들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가 대표적이다. 심각한 군사적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내 초강경파를 우회해 군사적 지출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 재건'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리려 한다. 미국의 국방비 증액 수준은 러시아 국방비 총액과 맞먹는다.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20조달러를 넘었다. 가파른 상승세다. 빌려야 하는 이유는 커져만 가고, 그에 따른 이자 지급액도 덩달아 많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타공인 저금리 선호 인물이다. 동시에 예산 증액론자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예산 적자를 늘리면서도 낮은 금리를 유지하는 길이 있을까. 방법은 위기와 공포를 조장해 해외의 미 국채 보유 수요를 늘리는 길뿐이다. 그렇게 되면 해외의 달러가 미 본토의 월가로 흘러들어오고, 그 결과 미국 내 금리는 낮아진다. 역사가 증명한 달러패권이다.

물론 이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달러의 위상이 지속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또 달러로만 거래하는 거대한 달러 풀(pool)이 해외에 계속 존재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화해협력 대신, 추가적인 경제금융 제재를 준비중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러시아 최대 상업은행인 스베르방크 CEO인 게르만 그레프는 12월 2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을 '국제 은행간 결제시스템'(SWIFT)에서 몰아낸다면, 파괴적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르면 올해 2월 러시아 금융기관을 SWIFT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대러 추가 금융제재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조치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왜 미국과 유럽은 혼란과 파국의 늪에 빠지려는 걸까. 그 답은 앞서와 비슷하다. 미국의 우월함을 회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기초는 달러의 국제적 위상인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과도한 채무를 지면서 달러의 힘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달러 특권을 허무는 대항마로 나선 것이 괘씸할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 9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 경제 구조가 부당하게 설계돼 점차 커지는 신흥국의 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정 기축통화의 과도한 지배력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연히 러시아는 미국의 분노를 샀다. 달러 특권에 맞선 사담 후세인이나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미국은 러시아에도 'SWIFT 배제' 등 응분의 조치를 준비중이다.

물론 금융전쟁은 새로운 게 아니다. 미국은 2005년부터 연례적으로 금융전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국(NSA)국장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헤이든 장군은 금융전쟁을 21세기 전쟁의 1차적 수단으로, 경제제재를 '정밀유도병기'(PGM)로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을 위기로 치닫게 만드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높은 부채 상한을 요구하면서 미국 경제의 부활을 위해 막대한 저금리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것뿐만 아니다. 크룩은 "그보다는 글로벌 통화체제를 바꾸기 위해 수년 동안 뿌려진 씨앗이 단단한 대지를 뚫고 나와 싹을 틔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글로벌 통화체제의 전환은 급진적이라기보다 점진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2012년 이란 금융기관의 국제청산결제를 전면 금지하고 1000억달러에 이르는 이란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원유수출을 막으면서 달러를 구하지 못한 이란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때부터 달러체제를 회피하려는 국제적 단결이 시작됐다.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셰일석유 업계를 견제하는 동시에 시리아를 돕는 러시아를 골탕 먹이기 위해 국제유가를 낮추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도 러시아 루블화에 대한 '약세 매도'(bear raid) 공격을 통해 협공을 펼쳤다. 중국이 은밀히 국제 외환시장에 개입해 루블화 붕괴를 막아준 덕에 러시아 경제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달러를 우회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확인한 때다. 세 나라는 상호간 국제무역에서 달러 사용을 중단하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명확히 했다.

크룩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말 밝힌 안보전략이 시행된다면, 현재의 위태로운 균형상태가 뒤집어질 위험이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에 대해 금융 제재가 추진된다면,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글로벌 통화체제 변혁이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피아를 막론한 금융 대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스베르방크의 게르만 그레프가 경고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중국이다. 중국 경제규모는 러시아보다 9배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날이 갈수록 중국에 대한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선기간 트럼프는 무역과 지적재산권을 거론하며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2017년 9월엔 미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이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중국 금융기관을 SWIFT 시스템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연말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 선언에서 중국은 수정주의 국가이자 미국의 경제, 정치적 우위성을 위협하는 경쟁국으로 정의됐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서구의 분석은 낙관적이다. 중국이 미국과 금융전쟁을 벌인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크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중국이 막대한 규모의 미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확실한 건 중국과 러시아, 브릭스 회원국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전쟁을 심사숙고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룩에 따르면 중국도 '현대전은 금융적 측면을 띨 수밖에 없다'는 헤이든 장군의 견해를 공유한다. 즉 미국이 북한과 시리아, 이란 등에 대해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이유는 지속적인 금융전쟁을 위한 전선이라는 것, 때문에 중국은 재빠른 반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이자 전략가인 차오량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5년 국제정세 연구사이트인 '하트랜드'에서 미국 주도의 금융전쟁 양상과 중국의 대응에 대해 자세히 논한 바 있다(내일신문 2016년 2월 23일 '미, 달러 약세-강세 전환 반복해 세계의 부 착취' 참조).

차오량에 따르면 미국은 달러를 국제적으로 순환시키면서 인플레이션을 모면하고 있다. 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71년 달러와 금의 연동 폐기"라며 "이후 인류는 역사상 최초의 금융제국과 달러패권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달러와 금의 연동이 파기됨으로써 미국은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한정 달러를 발행하지는 않는다. 달러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 발행을 조절해야 한다. 달러 발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달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미국은 달러 표시 채권(국채)을 발행해 외국에 나가 있는 달러를 다시 끌어모은다. 즉 한쪽에서는 달러를 찍어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채권을 통해 달러를 빌리면서 통화량을 조절한다. 달러가치의 약세와 강세를 미국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미국의 부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 전략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는 증권가 속어로, 헐값에 매입한 주식을 허위소문 등으로 폭등시킨 뒤 팔아치우는 행태를 의미한다.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 덕분에 가능한 전략이다.

차오량은 1997년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퀀텀펀드'를 필두로 수백 개의 핫머니들이 아시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태국 바트화를 융단폭격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바트 위기가 시작된 지 약 1주일 만에 위기의 연쇄반응이 일어나 남쪽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덮쳤고 이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국과 대만, 홍콩, 일본, 한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위기가 퍼져나갔다.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

국제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투자 환경이 악화됐다고 결론 내리고 아시아로부터 자본을 빼갔다. 기회를 잡은 미 연준은 금리 인상의 나팔을 불었다. 아시아에서 철수한 국제 자본은 다시 미국 자금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충분한 자금을 끌어 모은 미국은 다시 아시아로 돌아와 헐값이 돼버린 고급 자산들을 대거 사들였다. 이것으로 아시아 경제는 힘쓸 새도 없이 무너졌다. 개방이 더뎠던 중국은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차오량은 1997년 사례에 독특한 패턴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달러가치가 10년 약세에 있다가 반전돼 6년 강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미국이 금융전쟁을 수행한다는 것.

전례가 있다. 1970년대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대규모자본이 중남미로 몰렸다. 중남미에 투자가 늘어났고 이 지역은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거의 10년간 지속된 달러약세는 1979년 미국이 달러 발행을 줄여 가치를 올리기로 마음 먹으면서 반전됐다. 달러가치가 상승했고 중남미로 유입되던 투자가 줄어들었다. 이 지역에 달러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중남미 각국은 곤경에 빠지게 됐다. 게다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과 맞물리면서 중남미 경제는 폐허가 됐다. 반면 미국은 호황을 맞았다. 미국 자본은 중남미로 돌아가 경제위기로 헐값이 된 고급 자산을 대거 사들였다.

달러를 동원한 미국의 금융전쟁을 꿰뚫고 있는 중국은 그에 걸맞은 전략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가 진정한 기축통화가 되려면 앞으로 수년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무역의 지배자다. 조만간 국제원유를 금 선물과 연계하려고 준비중이기도 하다.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INE)는 4차례에 걸쳐 위안화 표시 국제원유선물 출시 시험을 시행했다. 원유선물은 상하이 또는 홍콩 금시장에서 실물금으로 전환이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미 중국 베이징에 사무실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중국 금시장으로 이동할 막대한 실물금 인도물량 관련작업을 기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다. 

또 중국은 2015년 10월 서구 주도의 SWIFT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형 국제결제시스템’(CIPS)을 출범시켰다. 현재는 SWIFT와 CIPS가 청산결제 업무를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므누신 재무장관이 경고한 대로 중국이 SWIFT 시스템에서 배제된다면,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은 CIPS 시스템으로 결집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중국의 공식 방침은 달러체제에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국제무역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핵과 무역 이슈 등에서 미국의 대중 적대감이 고조된다면, 향후 상황은 예단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거래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유로화를 받고 있다. 또 자국 내 유가 인덱스는 달러 대신 위안화로 표시하고 있다. 페트로달러(석유달러) 외에도 대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을 출시한다면, 석유달러 시스템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에 위안화를 받고 석유를 건넨다면, 달러 체제에 미치는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에 대해서도 중국은 사우디가 거부할 수 없는 좋은 조건의 거래를 제안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봉쇄작전을 지속한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중국과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면, 러시아 스베르방크의 그레프가 경고한 치명타를 맞게 될 나라는 중국보다 미국일 것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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