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말이 칼이 될 때

혐오표현, 집단적 조직적 대응해야

2018-01-05 10:23:03 게재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1만4000원

#결국 소수자들이 처해 있는 불평등의 맥락 때문에 혐오표현은 그 표현 수위와 상관없이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혐오표현은 특별히 대응하기도 구차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고착화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김치녀 김여사 개념녀 같은 차별적인 언사들이 식사·술 자리에서 농담식으로 난무할 때 이를 하나하나 따지고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너무 예민하다", "분위기를 깬다", "농담인데 왜 혼자 유난이냐" 등등의 반격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들은 '침묵'을 선택하곤 한다. 웃는 척하면서 넘어가기도 하고,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이때 침묵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요된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러한 침묵이 지속되다 보면 점차 그런 차별적 언사들이 정당화되고 고착화된다.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말이 칼이 될 때' 중에서)

언제부턴가 '맘충' 같은 표현들이 일상화됐다. '여성혐오'를 뜻하는 '여혐'은 이제 공식화된 표현이 돼 버렸고 표현의 혐오를 넘어 현실에서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같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일베'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또 어떤가.

이들은 정치적 진보 세력이나 여성, 이주자 등 소수자들을 희화화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 모든 것은 '혐오표현'으로 정리된다. 진보적인 법학자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 등에 참여해 온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가 '혐오표현' 문제에 대해 다룬 '말이 칼이 될 때'를 새로 펴냈다. 이 책은 혐오표현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단행본이다. 저자는 혐오표현을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에 근거해 소수자와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은 성별(여성), 인종(흑인·아시아), 성적 지향(소수자), 지역 출신(전라도), 종교(무슬림), 장애 등으로 구분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에게 혐오표현은 단순히 싫다는 감정이나 일시적 느낌,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혐오표현은 감정 차원을 넘어 차별이 되고 증오범죄가 돼 현실 세계로 드러난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은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위협을 느낀다. 때문에 혐오표현은 사회적·법적으로 섬세하고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미디어 규제 등 여러 차원의 사회적 규제와 차별금지법 등을 소개한다. 이 외에도 일상에서 △대항표현 △혐오주의자 고립시키기 등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사자 개인의 대응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지만 결국에는 집단적, 조직적 대응이 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하다. 혐오표현으로 고통받는 당사자 개인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 개인 이외에 사건 현장의 목격자들, 그리고 사건을 전해들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이 집단적 항의에 나서야 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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