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⑦ 김성훈 법무법인 한누리 회계사

"기업 내부회계통제 구축, 출발부터 잘못"

2018-01-23 10:49:08 게재

외부감사하는 회계법인이 맡아 검증 부실 … "회계사들 의구심 있어도 그냥 덮어"

"2005년부터 국내 기업들이 내부회계통제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대부분 국내 빅4인 대형 회계법인이 맡았다. 대부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일종의 용역으로 처리하면서 요식행위로 끝났다."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하다 당시 컨설팅업체로 자리를 옮겼던 김성훈 회계사(법무법인 한누리)가 기억하는 국내 내부회계통제시스템의 도입 과정이다.

김 회계사는 "주요 기업들은 빅4에서 외부감사를 받는데, 회계법인이 내부회계통제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외부감사를 진행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회계법인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이니 감사를 하면서 잘못을 지적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부통제의 기본은 업무분장인데, 그런 차단벽(차이니즈월)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며 "내부회계통제는 회계법인이 아니라 외부감사에 관여하지 않는 내부감사와 관련한 전문 컨설팅 업체에 맡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의 대형 회계부정 사건들은 모두 내부회계통제제도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론이나 월드콤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엔론 사태 이후 기업회계개혁법안인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을 도입했다. 미국 기업들은 이때부터 내부회계통제제도를 구축했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2000년 중반부터 도입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주로 전문 컨설팅업체가, 우리나라는 대형 회계법인이 구축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김 회계사는 "국내 컨설팅업체들은 미국과 같은 특수를 기대했다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기간에 작성된 외부감사 검토보고서에는 내부회계통제와 관련해 '적정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제대로 된 내부회계통제시스템이 구축되고 시스템이 올바로 작동됐다면 분식회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감사보수 무조건 깎으려는 기업들 = 김 회계사는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면서 법률사무소(Tucker, Ellis & West)에서 근무했다. 2011년 오하이오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귀국, 법무법인 한누리에서 일하고 있다.

김 회계사는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이 외부감사인과 계약을 체결할 때 똑같이 '자유수임제'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의 기업문화는 180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기업은 (법률·회계)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정당한 수임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반면 한국 기업들은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깎아달라고 한다. 감사보수가 깎이면 결국 감사투입시간이 줄고 감사품질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회계사는 "외감법 개정에서 가장 환영할 만한 부분은 표준감사시간 도입"이라며 "감사투입 시간을 정형화하면 최소한의 감사시간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보수가 미국 대비 3분의 1 수준"이라며 "절반까지만 올라가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계사는 업무 초기에 다른 선배 회계사들로부터 "회계사는 모두 폭탄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후 알게 됐다. 문제가 되는 회계처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덮어놓는 것이다.

"회계사는 폭탄을 하나씩 갖고 있다" = 그는 "극단적인 예로 감사현장에서 엑셀 시트를 갖고 함수를 돌리면 안 맞는 게 나온다. 그러면 틀리다고 해야 하는데 수기로 고친 다음에 맞는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10년 전 얘기지만 지금도 감사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회계사들이 감사절차에서 전문가적 의구심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구심이 조금만 있으면 매출채권에서 이상한 부분을 조사해야 하는데 그냥 덮는다"며 "감사보수가 낮기 때문에 감사시간이 적고 결국 이런 의구심이 들어도 물리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계사는 외감법 개정으로 감사보수가 올라가는 만큼 회계법인의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감법 개정으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 시효는 기존 3년에서 8년으로 연장됐다. 따라서 향후 손배소송이 확대될 예정이다.

"국내 회계법인 배상액 크지 않아" = 김 회계사는 "미국이 비례책임제를 도입한 이후 회계법인이 95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전체 매출액의 평균 6~7%를 배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면 국내 회계법인의 경우 2013년 기준 회계업계 전체 매출 2조1000억원에서 손배액은 31억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매출대비 배상액이 0.15%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다.

2016년 회계법인의 손해배상액은 16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매출액 2조6734억원과 비교하면 6.1% 수준이다. 2014년 14억원과 비교하면 2016년이 이례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금감원은 "회계법인의 감사업무 부실 등을 이유로 한 소송 및 손해배상금액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배상책임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회계사가 더 이상 회계부정을 덮어두고 갈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며 "회계사들도 확실히 '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 꾸준히 소송 문의" = 법무법인 한누리는 불법행위 피해자들을 주로 대리하는 원고전문 로펌이다. 소액주주 등을 대리해 각종 증권소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 회계사는 "투자자들이 꾸준히 문의를 해오고 있다"며 "증선위에서 나온 감리보고서 조치 내용을 검토한 뒤에 투자자들의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할지 입장을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누리는 현재 아이폰 소송을 대리하고 있으며 40만명이 넘는 유저들이 소송의사를 밝힌 상태다.

김 회계사는 "국내 기업들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고 글로벌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해외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외국로펌에서 소송 관련해 문의가 들어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사들이 높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윗선에서 뭐라고 하든 본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 회계부정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2004년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했다.

['회계제도개혁, 전문가에게 듣는다'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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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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