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채용비리 공방 … '갈길 먼' 혐의입증

2018-02-02 10:48:16 게재

금감원, 대검에 수사참고자료로 보내 … 의심 정황 다수 발견했지만 혐의자 특정못해

금융감독원이 은행 채용비리 의혹 검사결과를 대검찰청에 보냈지만 수사의뢰가 아닌 수사참고자료 형식으로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금융사 채용비리 규탄│청년정당 우리미래 당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민간금융사 채용비리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효진 인턴기자


2일 대검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금감원에서 수사참고자료로 받았다"며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아니어서 자료 검토 후 사건 배당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참고자료로 검사결과를 보냈다는 것은 비리 의혹이 있지만 혐의자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의뢰보다는 입증이 낮은 단계다. 금감원이 통상 검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 보내는 방식이지만 고발이나 수사의뢰 보다는 입증이 구체적이지 않아 사실상 검찰에 판단을 맡긴 것이다.

검찰은 자료 검토를 통해 수사의 단서를 확보했다고 판단하면 추가 자료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에 나서는 절차를 밟게 된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사건과 같은 수순이다. 우리은행도 은행의 자체검사 이후 금감원이 현장검사를 벌였고 검사결과를 대검에 수사참고자료로 보냈다. 서울북부지검에 사건을 배당한 직후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인사팀장 등 실무자 3명이 곧바로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사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구속영장마저 기각되면서 검찰의 수사 동력은 급격히 힘을 잃었다. 결국 구속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채 불구속기소로 수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재청구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있는 만큼 재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구속 여부가 재판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속영장 발부는 죄질이 무거워 실형 선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갖는다. 검찰이 구속을 '골인'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상 구속영장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발부된다. 피의자가 기소됐을 때 실형 가능성이 높으면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실형 선고 가능성'도 법원이 영장 심사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이다.

검찰 수사에서도 구속과 불구속이 갖는 의미는 차이가 크다. 피의자를 구속하면 자백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불법행위를 지시한 '윗선'이나 추가 관련자에 대한 진술을 받아내기에도 유리하다. 이 때문에 검찰이 3개월간 우리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했지만 피의자를 구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다.

금감원은 채용비리로 2명이 구속기소됐는데, 감사원은 혐의대상을 특정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금감원이 은행들의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참고자료로 보낸 것과는 차이가 있다. 금감원 조사결과에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도 혐의입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확실한 비리혐의를 잡아야 은행이 반발하지 못할텐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비리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1일 최 원장은 "(시중은행들의) 여러 가지 채용비리 상황을 (금감원이) 확인해 검찰에 결과를 보냈다"며 "검사 결과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금감원이 은행들의 채용비리를 의심할만한 여러 정황을 발견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채용비리의혹 이면에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한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현재 논란의 핵심이다. 점수조작이나 서류위조 등이 벌어졌다는 게 입증되면 담당업무 관련자들에 대해 업무방해죄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은행들의 반발은 압력이나 청탁을 통한 특혜채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명문대학 출신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다른 대학 출신들은 불합격시킨 것과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임원 면접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합격여부가 바뀌었는데 면접 자체가 불필요한 절차였다"며 "인사부서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윗선의 개입이 의심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감원은 특정인을 뽑기 위한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다"며 "금감원 조사의 한계"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이 밝혀야 할 과제다. 최 원장이 채용비리와 연루된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찰에서 재확인한 다음에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검은 조만간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의 사건을 일선 검찰청에 보낼 예정이다. 여의도에 본점을 두고 있는 KB국민은행은 관할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남부지검은 금감원 채용비리를 2차례나 수사했다.

서울 중구에 본점을 두고 있는 KEB하나은행의 관할 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이다.

최근 참여연대가 김정태 하나금융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등을 은행법과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이 기업·금융범죄 전담부서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에 배당됐다는 점에서 같은 부서에 보내질 가능성도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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