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아세안은 중국·인도시장 연결하는 기본축

"아세안 e커머스-철도건설에 반드시 참여해야"

2018-03-22 12:05:40 게재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이선진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는 발로 뛰는 기자보다 더 현장에 충실한 학자이자 외교 전략가이다. 1975년 9월 외무부에 입부(외시 9회)해 주일공사와 주상하이 총영사, 외교부 외교정책실장,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낸 중국-동남아시아 지역전문가다. 이 교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접경지역을 9년째 육로를 따라 장기여행을 하며 지역경제 통합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해 말 싱가포르대학 중국문제연구소(EAI)에서 4주가량 학술토론에 참가했으며 귀국길에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인 다낭과 수도 하노이를 거쳐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주도인 난닝(南寧)을 둘러보고 2월 초 귀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터 24일까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베트남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지난해 한 해 동안 베트남을 4차례 다녀왔다. 미얀마 방문 길에 들렀고 라오스와 중국 윈난성 쿤밍을 거쳐 하노이를 방문했으며 한-베트남 수교 25주년 행사차 방문했다.

베트남은 국민 평균연령 29세이며 1억명 가까운 인구에 60% 이상의 경제활동 가능인구로 성장하는 내수시장뿐 아니라 동남아로 가는 교두보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우리 기업의 투자도 활발하다. 삼성전자의 총 베트남 투자규모는 173억달러(약 19조원)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지난해 12월 베트남 500대 기업중에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어려워지면 한국이 흔들리고 베트남도 휘청이는 구조다. 지리적으로 베트남은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미얀마 등과 인접해 있다. 중국과도 인접해 있으며 다른 국가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아세안에 관심을 가져야할 분야는 어디인가.

아세안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물류가 화물자동차에서 철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아세안은 협괴철로로 건설된 지 100년이 넘어 시속 70~80km 이상 달리지 못한다. 아세안이 철도표준이 국제화 되면 200km 이상 속도를 낼 수 있다.

중국 난닝에서 쿤밍행 고속철을 타보았는데 200km로 달렸다. 중국이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태국이 호응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은 일본 신칸센으로 하고 있다. 한국도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당장 장거리 고속철도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비교적 짧은 구간에서 성과를 낸 뒤 다른 곳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아세안에서 철도를 교체하는 프로젝트가 아주 많다.

최근 아세안의 고민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싱가포르의 동남아연구소장이 의미 있는 제안을 했다. 그는 한국이 아세안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지역분업체제를 복원하자고 했다. 동아시아는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달리 정부차원과는 별개로 상호 의존성이 강하다. 지역생산분업체제가 발달해 있어 각 나라마다 장점을 살려 가격과 품질 관리만 잘하면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만든 생산시스템이다. 최근 중국의 위상이 커지고 수출 위주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아세안과 생산분업체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아세안에서 중국과 관계가 밀접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30년 이상 동아시아 경제를 지탱해온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아세안 분업체제 복원을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아세안에는 분업체제를 복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이 아세안과 함께 나선다면 일본과 중국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한·중·일과 아세안이 외환위기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2000년 5월 체결한 역내 자금지원제도이다. 초기에 일본과 중국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이 나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과 아세안이 힘을 모아 중국과 일본을 견인할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아세안과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공동 노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아세안에서 열쇠를 주고 있는 나라는 싱가포르이다. 아세안 의장국인데 아세안 e커머스를 주도하고 있다. 그동안 싱가포르는 아세안 경제통합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1992년 의장국일 때 이전의 정치와 안보 위주의 아세안 협력구도를 아세안 FTA를 주창해 경제로 돌렸다. 아세안이 정치적으로 친중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갈라져 있다. 싱가포르는 다시 경제로 방향을 돌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가 아세안에 진출했다. 일본 기업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IT분야에 집중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아세안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

한국과 베트남이 중요하고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과 아세안 관계이다. 우리 외교는 양자 관계에 익숙해 있어 다자와 지역주의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강단에서 강의할 때도 지역주의, 지역 경제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느냐에 대해 강조한다. 나프타나 EU의 특징은 정부 간 합의 후 협정의 틀 내에서 일을 한다.

아세안은 다르다. 정부간 협정 같은 것이 없다. 하지만 아래로부터 민간 기업이 연결되어 서로 투자하고 거래를 해왔다. 그후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리는 방식이다. EU나 나프타처럼 정부 협정에만 집착하면 동아시아 지역주의 본체를 볼 수 없게 된다. 10여년 동안 아세안 현장을 발로 뛰면서 통합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무엇인가.

아세안 나라들 현장을 가보면 e커머스 전망이 밝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와이파이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6~7년 전만해도 미얀마에 가서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했다. 요즘은 미얀마 산골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버스 타고 가면서 전자우편을 보냈다. e커머스가 활성화 되려면 인터넷 기반시설이 좋아야 하는데 10년 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이다. 아세안에서 도로망, 항공망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통신망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의 시장 통합이 놀랍다.

한국이 지난해 아세안에서 300억달러 무역 흑자를 달성했다. 중국은 440억달러였다. 한국이 중국에 공을 들이는 것에 비하면 아세안에는 지나치게 소홀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집권 후 1년 만에 아세안 10개국을 다 찾아다녔다.

최근에는 아세안과 인도의 관계도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가 수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부품과 완성품을 아세안과 일본 중국에서 들여온다. 아세안은 중국 인도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미얀마를 통해 인도에 들어가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포스코의 인도 진출만해도 그렇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바로 진출하는 것이 어려우면 인도네시아를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중국 윈난성 쿤밍을 통해 아세안 국가인 베트남과 인도로 진출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쿤밍이 아세안 진출의 거점이기 때문에 코트라(KOTRA) 무역관을 설치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아세안은 동북아와 동남아, 인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중국 아세안 인도라는 성장축이 중요하다. 아세안에 거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성장축 연결이 안 된다. 아세안을 빼고 중국 인도 등을 얘기할 수 없다.

아세안 진출 전략 중 주의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일본이 아세안에 투자를 많이 했다. 그 목적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아세안 국가들에는 화교들이 많다. 게다가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아세안과 떨어져 있다. 아세안 국가에서 다른 제3국을 겨냥한 투자나 관계 설정은 매우 위험하다.

싱가포르대학 중국문제연구소(EAI)에서 4주가량 학술토론에 참가했다. 논의 내용을 소개해 달라.

싱가포르는 미중 관계의 흐름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가장 정확하게 읽고 있는 나라이다. 격년마다 방문한지 이번이 5번째니 벌써 10년이 되었다. 2년 전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 학자는 물론 미국, 호주에서 온 중국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이 사드(THAAD)를 받아들이면 크게 다친다고 주장하던 내용을 지인들에게 전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이 최대 현안이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이 추진될 경우 불가피하게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와 상호 협력보다 군사전략은 물론 무역·경제 분야에서도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나 아세안 등 중소국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사드 같이 미중 경쟁에 말려들지 않을지 난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적 중심축에서 주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앞서 대응하기보다, 우선 인도-태평양 정책 추진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본 후 움직여도 늦지 않다. 또한 학계중심으로 대응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오랜동안 미중 대립을 경험한 싱가포르와 인도-태평양 정책 관련 정보 교환 및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했으면 좋겠다.

싱가포르의 실용적 외교전략에 대해 소개해 달라.

모두와 친구가 되고 그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이 인상적이었다. 냉전시대에도 친미 국가에 가까웠지만 반소련 또는 반공주의를 표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세안 10개국 중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미국이 싱가포르를 방어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미국을 위해 분쟁에 동참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미국과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미는 아니다. 독립적일 뿐이다.

[관련기사]
2018년 아세안 주요국 선거전 돌입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