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사장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 만들겠다"

2018-04-17 10:15:44 게재

올해 700명 채용 "사람에 대한 투자가 진짜 투자" … T-50 미국 수출 기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FM(Field Manual)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사장이나 관리자가 없어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잘 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회사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이의종 기자

김조원 KAI 사장이 인터뷰를 처음 시작하면서 던진 말이다. 그는 지난달 주주총회를 마친 후에도 주주들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이러한 메시지를 직접 작성해 직원들에게 보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김 사장은 그동안 'FM KAI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지내왔다. 김 사장이 취임한 지난해 10월은 KAI가 임원진 분식회계 의혹, 채용 비리 등 각종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심한 몸살을 앓던 때였다.

그만큼 김 사장은 해결해야할 숙제가 있었던 셈이다.

김 사장은 취임 후 닷새 만에 경영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KAI를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작동되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 빠른 결단이었다. 김 사장을 만나 지난 6개월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혁신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다. 배경은.

KAI가 과거 빠른 성장을 목표로 달리다보니 내실을 다지는데 소홀했던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시스템이 아닌 특정 개인 중심으로 경영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구성원들이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었고,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사외전문가와 사내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경영혁신위원회는 약 1500건에 이르는 구성원들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토론과 외부 자문을 받았다.

이어 △미래전략 △연구개발 △인사조직 △재무회계 △구매관리 등 5개 분야 80개 세부 혁신과제를 도출해냈다. 지금은 이를 토대로 'FM KAI' 만들기에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올해 대규모 채용계획도 발표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올해 신입 200명, 경력 500명 등 총 7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신입사원 접수는 지난 10일 마감했고, 경력사원 모집은 6월까지 7차례에 걸쳐 선발한다.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확대가 중요한데, 기술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닌가. 10~20년 이후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주도할 핵심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 판단해 대규모 채용을 추진하게 됐다.

한국형전투기(KF-X), 소형무장·민수헬기(LAH·LCH) 등 대형 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항공정비(MRO) 사업이 추진되면서 엔지니어 중심으로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과제이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도한 채용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KAI는 민간기업이지만 국가가 지분 33%를 보유한 국영기업이기도 하다. 국영기업은 이익을 지나치게 많이 낼 필요가 없다. 영업이익률을 1%만 낮추어도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다보니 투자에 인색하다.

국내 서비스분야 한 대기업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1조원 이상 냈다. 이 돈이면 10만명에게 1000만원을 더 줄 수 있는 규모다. 이중 절반을 떼어내 미래에 투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투자는 연구개발(R&D)의 확대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투자는 사람에게 하는 게 진짜 투자다. R&D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 결국 R&D를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T-60으로 업그레이드한다고 치자. 그땐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기존 설계도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설계를 해봤던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미국 공군 차기 고등훈련기 사업(APT)' 수주 가능성이다. 어떻게 되가나.

APT 사업은 미 공군의 전투기 조종훈련을 담당하는 고등훈련기를 교체하는 사업으로 총 351대 규모다. 현재 '미국 록히드마틴-한국 KAI 컨소시엄'과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이 경쟁하는 구도다.

KAI 컨소시엄은 이미 국내외에서 T-50 200여대를 운영하고 있어 안전성 검증이 됐고, 개발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보잉-샤브 컨소시엄은 이제 시제기가 나왔으니 안정화시키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 컨소시엄의 주계약자는 미국의 록히드마틴이고, KAI는 협력업체다.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다.

록히드마틴이 수주할 경우 KAI는 T-50 기체구조물을 제작해 납품하며, 최종조립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록히드마틴공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5월쯤 미 공군의 최종가격 제안서 제출요청이 오고, 6~7월중 기종선정과 계약체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APT 수주시 기대효과는.

사실 이번 한 건 수주로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체구조물 제작에 대한 부분만 KAI 몫이다.

하지만 미국 후속물량(650대)과 미국산 전투기 운용국에 대한 추가 수출(1000대) 등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 APT 수주시 KAI는 물론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의 성장 및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KAI의 오랜 현안이던 항공정비(MRO) 전문업체 지정이 지난해 말 실현됐다. 추진 현황은.

7월에 법인 설립 후 국토교통부 허가를 받으면 올 11월 말~12월 초쯤 민간 항공기 정비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2300대의 항공기가 운영되고 있는데, 전문 정비업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정비는 모두 해외에서 했다. 비행기 제조도 하고, 운행도 하는데 정비를 전담하는 기업이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젠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정상화되는 단계로 들어섰다. 자동차 분야에 비유하자면 정비시설이 전혀 없다가 1급 자동차 정비공장이 생기게 된 것과 유사하다.

국내 항공MRO 시장규모는 2조9000억원(군수 1조원 포함)에 이르며, 2025년에는 4조2000억원(군수 1조7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2월에는 차세대 중형위성 2호기 개발협약도 체결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항공우주연구원과 지난 2월 협약을 맺고 국내 기업 최초로 위성개발 총 주관을 맡았다. KAI와 항우연이 공동개발하고, 1호기의 위성기술을 이전받아 2호기부터는 KAI가 개발을 주도할 계획이다. 발사시점은 1호기 2019년, 2호기 2020년 예정이다.

그동안 정부주도로만 진행되던 위성개발이 민간기업 주도로 확대되면서 국내 우주기술 산업화가 눈앞에 왔다. KAI는 항공기 수출 노하우를 활용해 우주기술 수출산업화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해 200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좋지 않았다. 올해는 낙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올해는 2조5000억원 매출이 예상된다. APT 등 국산 항공기 수출과 기체구조물 수출확대 가능성도 크다.

또 지난해 말 수리온 헬기 양산 재개에 이어 MRO 사업착수, 우주사업 확대 등 주력사업과 미래 신사업 모두 안정화시켰다.

향후 KAI가 만든 항공기가 우리 공군이 소유한 항공기의 70% 이상을 차지할 것이며, 지구를 관측하는 인공위성과 우주발사체까지 만드는 세계적인 항공우주업체로 도약할 것이다.

KAI의 현재 매출규모는 세계 30위권 이지만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세계 5위권으로 발돋움하겠다.

차염진 정재철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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