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어 터키도 '달러 역린' 건드려

2018-04-26 10:53:49 게재
리비아와 이란에 이어 터키가 공식적으로 반(反) 달러 대열에 합류해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온라인매체 '스트래티직컬처'에 따르면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나라간 대출은 미국 달러가 아니라 금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이달 1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글로벌 기업가정신 총회'(GEC) 개회식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는 선진20개국(G20) 모임에서 '왜 모든 국제적 대출이 달러로 이뤄져야 하는가. 다른 통화를 사용하자. 나라간 대출은 금에 기반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GEC는 전 세계 170여 회원국 기업가와 투자자, 연구자, 정치인들이 참여해 글로벌 기업가 생태계 구축과 강화를 목표로 한 회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달러 때문에 전 세계가 환율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환율 압박으로부터 전 세계 나라와 민족을 구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은 압제의 도구로 쓰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사흘 뒤인 19일 터키 정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에 보관하던 자국 소유 금괴를 모두 국내로 반입했다고 밝혔다. 터키가 연준에 보관중이던 금괴 규모는 220톤, 가치는 약 253억달러(약 27조3000억원)였다.

이처럼 터키가 금괴 반입 등 미국 달러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신속히 줄이는 데엔 또 다른 배경이 있다는 설명이다. 스트래티직컬처는 "터키가 러시아의 최신형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S-400'을 구매하려 하자 미국이 경제적 제재를 경고하며 지속 압박해왔다"고 지적했다.

금괴 환수 움직임은 터키에 앞서 여러차례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2012년 미국에 보관중이던 금을 모두 자국내로 반입했다. 네덜란드는 2014년 122.5톤의 금괴를, 독일은 2017년 300톤의 금괴를 미국으로부터 각각 반입했다. 호주와 벨기에 역시 미국에 보관중인 금괴를 자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심중이다.

미국 재무부는 자국과 외국의 금괴 2억6100만온스(약 8100톤)가 켄터키주 포트녹스의 연방금괴저장소(58%)와 뉴욕주 웨스트포인트(20%), 콜로라도주 덴버시 미국 조폐국(18%), 뉴욕연방은행(5%) 등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으며 철저한 감시와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스트래티직컬처는 "연준이 연방금괴보관소를 완전하고도 독립적으로 회계감사한 적이 없다"며 "미국의 정확한 금괴 보유량을 실사해야 한다는 나라 안팎의 여론이 높았지만, 미 정부와 의회가 이를 번번히 저지해왔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금괴는 순도가 낮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싱가포르 소재 금괴판매회사인 '불리언스타'의 귀금속전문가 로난 맨리는 러시아 매체 RT 인터뷰에서 "미국이 보유중인 금괴는 순도가 낮아 국제산업표준인 '인도적합'(good delivery)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금은 적정 중량과 순도를 가진 금괴에 한정해 '인도적합' 표시를 한다. 인도적합 금괴의 중량은 1~400온스까지 다양하며 정련됐을 경우 99.5~99.9%의 순도를 지닌다.

맨리는 "미국이 보유중인 금괴는 질이 낮아 금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다"며 "오직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과 스왑거래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에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현재도 달러는 강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해 보호무역관세를 무기로 삼아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달러의 가치는 지속 하락하고 있다. 오히려 국제적인 통화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달러 대신 다른 나라 통화를 안전처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 위안화는 지속적으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 러시아와 터키, 이란 등은 결제수단에서 달러를 점차 배제하고 있다. 이란은 최근 회계처리 공식통화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전격 변경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양국 거래에서 달러 대신 자국 통화를 쓰고 있다.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미국이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달러를 이용해 경제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조차 그같은 협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각국 간 천연가스 프로젝트인 '노드 스트림2'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거래하는 유럽 기업들을 제재할 것이라며 압박해왔다. 이에 대해 독일 등은 '미국이 자국산 천연가스를 판매하기 위해 무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스트래티직컬처는 "주목할 점은 미국이란 나라는 달러 회피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좌절시켜왔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을 모아 금에 기반한 통화체제인 '디나르'를 도입하려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란은 무역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란에서 석유를 사려면 달러 대신 다른 통화를 써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쯤 '이란핵협정'을 파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핵협정은 2015년 7월 이란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간에 체결된 협정으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서방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체키로 한 합의다.

미국이 이를 파기하면 안보에 불안을 느낄 이란은 자구책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에 복귀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선 대 이란 무력사용에 나설 절호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이란핵합의는 국제사회로부터 '신의 한수'라는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왜일까.

스트래티직컬처는 "이란은 미국을 직접 위협할 아무런 군사무기가 없을뿐더러 테러행위에 연루되지도 않았다"며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달러 역린'을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달러의 지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달러에 대한 국제신뢰가 하락하면 미국 행정부는 해마다 누적되는 막대한 적자를 메울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이란과의 전쟁은 달러를 무시한 거대 산유국을 벌주는 일이 된다.

스트래티직컬처는 "한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터키가 금을 전량 환수했다는 건 미국 주도의 통화전쟁, 나아가 양국이 무력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조"라며 "미국의 외교정책이 전개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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