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고기로 태어나서

'닭·돼지·개' 식용농장 체험기

2018-04-27 10:05:23 게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1만6800원

#"닭장이란 게 길게 보면 빵장 닭이 다른 놈들 죄다 쪼아 죽이게 돼 있는 거거든." 농장장이 말했다. 우리는 손전등을 들고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새벽 5시 반이었다.

"빵장 닭이 뭐예요?""감빵가면 제일 센 놈이 있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거든. 닭장마다 제일 센 놈이 있어서 이놈이 밥도 제일 먼저 먹고 자리도 자기가 제일 편한 곳에 앉는데…… 일단 들어가 봐요. 직접 보면 바로 알 테니까."

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계사 문은 낡은 천을 덧댄 판자였다. 그 문을 열기 전까진 산 채로 썩어간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게 아니었다. 주황빛 전구 아래 만 마리가 넘는 닭이 철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울고 있었다.

문 하나를 통과해 철새 도래지 한가운데로 들어선 것 같았다. 메스꺼운 노린내와 닭똥 썩는 냄새가 건물 안에 가득했다. 코로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린 기분이었다.

닭이 들어찬 케이지는 3단으로 쌓여 있었는데 그런 케이지들이 일고여덟 줄로 건물 끝까지 늘어서 있었다. 약한 지진이 농장을 덮친 것처럼 케이지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배고픈 닭들이 발광하는 듯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케이지 위로 뿌연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희미한 빛을 받은 먼지 알갱이들이 어찌나 크게 보이던지 하나하나가 죄다 내 눈, 코, 입 그리고 귀를 향해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개들 앞에 서자 숨이 헉 멎었다. 수입 개의 케이지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개들이 일제히 악을 쓰듯 내지르는 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개가 케이지 안에서 날뛰기까지 하면서 수백 개의 북을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부화장의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도 시끄러웠지만 개농장보다는 나았다. 기계 소리는 규칙적이라 머리가 아파도 그 안에서 어떤 리듬을 찾을 수가 있지만 개 짖는 소리는 마구잡이로 터져 나와서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개들의 어깨 높이가 1m는 넘어 보였다. 짧은 갈색 털에 귀는 축 늘어졌고 눈과 입 주위는 검었다. 소리만으론 내가 겁을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댔다. 동물 보호소를 찾은 커플들이 입양하고 싶을 만한 외모는 결코 아니었다. 개들이 뛰면 뛸수록 케이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털 먼지도 심해져서 꽃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새로 나온 책 '고기로 태어나서'에 담긴 내용들이다.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표지에는 '한승태 노동에세이'라고도 적혀 있다. 저자는 4년 동안 닭, 돼지, 개 등 식용 동물농장에서의 일하며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체험했다. 처음엔 "내가 알고 있던 동물이 그곳에는 없었다"는 단순한 충격으로 시작한 저자는 생명의 존엄과 윤리에 대한 문제부터 노동자들의 삶까지 고민하게 됐다.

'위생'이라는 말 꺼낼 수조차 없어

저자는 전세계인들의 식용 동물 닭, 돼지와 한국인들의 식용 동물 개가 고기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노동하고 체험하면서 관찰했다.

'노동 여행'이라고도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기간 동안 그는 단순하게 머리로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체를 확인하고 냄새를 맡아보려고 했다. 닭은 비좁은 케이지에 한가득 갇힌 채 고기가 될 부위들만 기형적으로 성장을 당한다. 수평아리들은 모조리 폐기된다.

돼지 농장에서는 육질을 위한 거세가 제대로 된 마취 없이 진행되며 전기 충격기가 쓰이기도 한다. 모돈의 경우 1년에 단지 40분만을 걸으며 그 외의 시간 동안에는 스톨이라는 기구 안에서 "동사(動詞)가 필요 없는" 삶을 살아간다. 적게 먹고 빨리 찌는 규칙은 농장 전체를 지배하고 이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돼지는 도태된다.

개 사육과 도살은 '관리' '위생'이라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이뤄진다. 이곳에서의 동물들은 모두를 서로 쪼아내고 물어뜯는다. 자연 상태의 닭, 돼지, 개에게서 이런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들에게 강제하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작은 것 하나부터 더 윤리적으로

"승태 이빨 잘 생겼네." 이 말을 듣고서야 저자는 같이 일하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치아 한번 제대로 관리 받을 여유가 없기에 밥을 먹을 때마다 찡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 환경에서 노동을 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 이곳의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특별하다.

책이 비판하는 지점들은, 좀 더 복잡한 맥락을 지니기도 한다. 개 농장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지만 개 농장이 한국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 제기를 위해 손대는 사업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한 고기'의 가격이 비싸진다면, 혹은 맛이 없어진다면 이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채식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인간과 동물이 똑같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저자는 작은 것 하나부터 더 윤리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며 식용 고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때에야 우리가 자연과 생명에 야기하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고민과 시도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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