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시민 문화활동 '고리' 되다

2018-05-02 11:14:29 게재

서울시 생활문화지원센터, 활성화 일등공신

2000개 동아리, 센터에서 연습·공연·전시 활동

올해 70개로 확충 … 지원 전문인력도 파견

"지난 주까지 음정은 거의 올라왔어요. 조금만 더 맞추면 될 것 같습니다. 자, 다들 힘냅시다" 지난달 24일 오후 7시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오케스트라 연습이 한창이다. 아마추어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들의 정식 명칭은 시민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말 그대로 시민들이 모여서 구성한 오케스트라다. 아마추어지만 실력은 만만치 않다. 이달 22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도 예정돼 있다. 1년간 시민필을 지도해온 이경구 지휘자는 "연습 시간 3시간 동안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연습에 몰두한다"며 "정해진 연습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도 다반사"라며 단원들의 열정을 전했다.

◆87년된 교회, 연주홀로 재탄생 = 시민필에게 체부동 교회를 개조한 이곳 센터는 더없이 고마운 장소다. 60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데 모여 연주하려면 악기 보관실, 연습실 등 연주 공간 외에도 꽤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87년 된 건물인 체부동 교회는 낡은데다 주변 상권 때문에 임대료까지 급등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 공간이 훌륭한 연주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가 보존을 원하는 시민과 교인들의 뜻을 받아들여 교회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 연주홀에서 시민 오케스트라가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형 기자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는 종로구 체부동 188로 2길에 있던 체부동 교회를 개보수해 만든 공간이다. 시는 역사성 보존을 위해 교회와 연결된 한옥도 함께 사들였고 130석 규모 콘서트홀과 연습실을 갖춘 전문 음악활동 공간으로 새로 꾸몄다. 한옥 별채는 지역주민들이 모임을 할 수 있는 북카페, 세미나실 등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캘리그라피, 자수 등 생활문화강좌가 열리고 세미나실은 회의 장소로 대관도 한다.

체부동 센터는 유서 깊은 건축물을 보존했다는 외형적 의미 외에 시민을 위한 음악전문 공간이자 주민들의 사랑방이 마련됐다는 의미가 크다. 음악 동아리들은 공연장이나 연습 공간 구하기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한다. 센터에는 콘서트홀 뿐 아니라 연습실, 오케스트라 연주에 필요한 다양한 악기도 구비돼 있다. 시민 누구나 대관을 신청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체부동 센터처럼 서울시민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동아리들의 활동 근거지를 마련한 곳이 신도림에도 있다.

2012년부터 운영돼온 신도림예술공간 '고리'다. 고리는 서울시가 주민의 생활 속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동아리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생활문화지원센터 1호점이다. 신도림역 지하광장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든 고리는 4개의 전시실과 3개의 연습실로 구성돼 있다. 고리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동아리들의 일상 활동이 이뤄진다. 인근 주민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감상 프로그램, 연극·그림·악기 동아리 수십 여개가 고리를 근거지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까지 동아리 연습·공연 공간 제공에 치중했던 고리는 올해부터 전시 전문공간으로 진화를 꿈꾸고 있다. 아마추어 동아리와 작가들은 전시를 하고 싶어도 작품 수가 적고 공간이 마땅치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리는 이들에게 전시 공간 제공은 물론 새로운 전시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고리에서 활동하는 여러 동아리들은 각자 작품을 모아 연합 전시를 연다. 외벽이 유리로 둘러싸인 전시관 형태는 신도림역을 오가는 시민의 눈길을 잡기에 적당했다. 고리를 주무대로 색연필화 동아리 '컬러링'을 이끌고 있는 장민수(40)씨는 "일반 공간이었다면 100명도 채 오지 않았을 전시에 하루 250여명이 다녀가곤 한다"며 "지하철역 빈 공간을 활용한 상상력이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리센터 총괄 매니저인 박흥태씨는 "지난해 전시를 관람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이 4만여명에 달하고 1만5000여명의 동아리 회원이 고리를 이용했다"며 "여러 동아리가 모여있는 공간 특성상 동아리 간 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진다 =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시민들의 예술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973개 동아리를 발굴했다. 지역 개별 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계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동아리 활동을 조언하고 시·자치구와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도 하는 생활문화매개자 70명도 선발해 각 자치구로 파견했다. 생활문화 매개자는 자치구별로 2명씩 배치돼 동아리 활동을 직접 지원하고 동아리와 동아리를 연결해주며 동아리들의 축제 참여도 돕는다. 시·자치구와 동아리 사이에서 중간 매개 역할도 도맡아 동아리들이 본연의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시에 따르면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는 일은 안정적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동아리들의 이같은 요청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시는 현재 52개인 센터 수를 올해 70개 이상까지 늘릴 계획이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체부동 고리같은 거점형 센터는 물론 권역별 센터, 규모가 작은 디딤돌형 센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센터를 만들고 동아리에 대한 지원도 다각도로 늘릴 예정"이라며 "시민들의 문화예술활동을 더욱 장려하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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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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