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퇴임 앞둔 김관용 경북도지사

"민선단체장 6선 비결은 겸손과 배려"

2018-06-22 11:53:45 게재

"지방 고사위기 … 지방분권 서둘러야"

아시아 문화연대 만드는데 역할 희망

지난 20일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3선으로 물러나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퇴임식을 겸한 북콘서트가 열렸다. 각계 인사와 도민들이 900여석의 강당을 가득 채웠고 강당 로비와 지하 쉼터에도 수백여명의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2000여명의 참석자들은 2시간에 걸쳐 이달 말 퇴임하는 김 지사와 마지막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이달말 3선 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사진 경북도 제공

평소 김 지사를 '형님'으로 모시는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인도 참석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선거기간 불미스런 사고로 다쳐 거동이 불편한데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 지사는 역시 덕장이었다. 임기를 10여일도 남지 않은 도지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날 6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23년 동안 경험한 현장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책 제목도 '6-현장이야기(밝은사람들)'다. 유년기부터 교사 생활까지, 행정고시에 합격해 시작한 공직생활, 구미시장과 경북지사 재임기간 치열했던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김 지사는 지방자치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구미시장 선거에 내리 3번 당선됐고, 곧이어 경북지사 선거에서도 3번 당선됐다. 지난해에는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도전했다.

그의 공직생활 기간도 기록이다. 1961년 교사로 공직에 발을 들인 기간까지 포함하면 57년 동안 공록을 먹고 살았다. 그런 그가 이달 말이면 공직을 떠난다. 선산(들성) 김씨 문중이 퇴임 후 기거할 한옥을 고향에 마련해줬지만 당분간 해외로 떠나 강의와 영어회화공부를 할 예정이다. 21일 퇴임준비에 바쁜 김 지사를 만나 소회와 퇴임 후 계획을 들어봤다.

■ 민선 6선의 비결은 무엇인가.

6번의 선거에서는 모두 이겼지만 수없이 지고 살았던 것 같다. 크게 덕을 쌓은 것도 아니다. 다만 져주는데 익숙했다. 겸손이다. 겸손은 져주는 것이다. 다음은 배려다. 손님 앞에서 한 번도 시계를 본 적이 없다. 나의 5분이 상대방에겐 평생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용무, 어떤 상황에서건 대화하는 동안은 경청하는데 집중했다.

■ 현장의 산 증인으로서 지방자치제도의 성과와 한계를 설명해 달라.

지방자치 초기 주민들은 무관심했고, 지방 공무원들은 중앙만 바라보는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투쟁의 산물이 아니고 위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시작됐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기획해 추진하고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새마을 세계화, 세계문화엑스포 등 경북도가 주체가 돼 이룬 성과들이 좋은 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음에도 어린이옷을 입고 있는 모양새다. 사무권한, 예산과 같은 실질적 내용은 전부 중앙이 틀어쥐고 있다. 집중된 권력과 권한을 기능과 역할에 맞게 분화하고 협치하는 분권이 시급하다.

■ 3선이 너무 길다는 지적도 있다.

장기 재임으로 인한 지역발전 저해를 방지하기 위해 연속 3선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발전 여부는 장기 재임과 상관없다. 단체장의 능력과 청렴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단체장에 적합한 인물은 주민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3선 한정은 자기결정권이라는 지방자치 본질과 조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임기제한이 레임덕 문제를 가져온다. 자치단체장 선출의 정당성을 수정·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실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라 보나.

분권은 자기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 되찾는 것이다. 단순히 나누고 뺏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히 실질적 지방분권은 정치논리가 아닌 시스템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권한을 내려주되 책임은 강화시키면 분권으로 야기될 수 있는 많은 한계점들을 보완할 수 있다.

■ 지난해 1월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고, 분권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시간적 한계와 낮은 인지도를 극복할 수 없었다.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의미있는 성과도 있었다. 지방에서도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울러 지방분권과 균형발전론자로서 소신과 비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박근혜정부의 몰락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느낄 것 같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져온 비극이다. 국가 권력을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갖춰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행정부 권한이 막강해 견제 없는 권력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제를 야기하고 승자 독식의 제도와 관행을 초래했다.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통치의 기본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다. 권력구조 개선의 시작은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은 불행한 지방자치의 구조를 깨는 열쇠다. 선택사항도 아니다. 권한과 책임의 조화도 매우 중요함을 선진국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고 새로운 지방 시대를 열어가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 도지사 재임 12년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경북도의 숙원사업이었던 도청을 이전한 것이다. 2006년 선거에 떨어질 각오로 내건 공약이다. 도청이전은 경북도의 정체성 확립과 북부권 발전 등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첨예한 이해 갈등으로 미뤄지고 있었다. 끈질긴 노력 끝에 도청이전을 완수하며 700년 경상도 역사의 전환을 이뤄냈다.

■ 도청 이전이 성과이긴 하나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엔 이르지 않나.

2년 만에 신도시가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4월 말 현재 주민등록인구가 1만1000명, 상주인구가 1만5000명이 넘었다. 같은 시기에 옮긴 충남 내포신도시와 전남 남악신도시보다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전대상 기관 107곳 중 70곳이 이전을 추진 중이다. 교육·주거시설, 병의원 등 정주여건도 착실히 마련되고 있다.

■ 재임 중 새마을운동에 많은 관심을 애정을 쏟았다. '김관용형 새마을운동'을 주창했는데.

경북은 2005년부터 세계로 시선을 돌려 새마을 세계화 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새마을세계화재단을 설립해 해외보급을 체계화하려고 했다.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15개국 48개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했다.

새마을운동을 정치 논리로 이해해선 안 된다. 밑으로부터 시작된 자생적인 잘살기 국민운동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 이미 경북의 새마을운동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단순지원이 아닌 의식변화를 주문하는 본질적인 원조방식으로서 저개발국 지도자들이 앞다퉈 요청하고 있다. UN공적개발원조의 모범 사례로 선정될 정도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퇴임 후 어떤 일을 할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받은 사랑만큼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파된 아시아지역을 방문해 문화연대와 동맹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외국인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필요하니 영어도 공부해야 한다. 강의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기 위해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대인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학교'와 협의 중이다.

■ 후임 지사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는.

현장이 집무실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본은 국민이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소통도 리더의 중요한 본분이다. 비판을 수용하고 대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또 지도자라면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확고한 신념이 생기면 한눈팔지 않고 밀어붙이는 결단도 있어야 한다.

공직사회와 관련해서는 공정한 인사가 중요하다. 선택했다면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 '의인불용 용이불의'(疑人不用 用而不疑)라는 말처럼 의심나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인사가 만사다. 실수가 없도록 항상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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